며칠 전,
밤 늦은 길을 천천히 운전하던 참이었습니다. 예배당 외등 아래 웬 아주머니가 개를 안고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참 예쁜 개였습니다. 저는 무의식적으로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렸지요.
"혹시 새끼를 분양하지 않나요?"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우리집 개가 아니에요. 유기견입니다."
아주머니가 조심스레 말씀하셨어요. 전 거의 반사적인 몸이 됐지요.
"유기견이라니요?"
"제가 아파트 17층에 사는데 초저녁부터 저만 따라다녀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17층까지 올라가기도 하구요. 구청 유기견센터에 전화해서 공무원이 오길 기다리는 중입니다."
저는 시동을 끄고 내렸습니다.
옆으로 다가가 머릴 쓰다듬으니 반가운 몸짓으로 꼬릴 흔드는 것이었습니다. 수컷이었습니다. 사실 유기견이라는 말만 듣지 않았아도 그냥 지나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순간 저도 모를 동정심 같은 게 작용하더군요.
아주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키우겠습니다. 유기견은 분양이 안되면 안락사 당합니다. 그보다야 낫죠."
아주머니도 흔쾌히 좋다고 하셨어요.
저는 공무원에게 전화 걸어 올 것 없다고 말하고 개를 데리고 집으로 왔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목욕을 시키고 우유에 날계란을 풀어 줬지요. 무척 배가 고팠던 것 같아요. 단숨에 먹더군요. 하긴 목욕을 시킬 때에도 땟국물이 흥건했습니다. 아무튼 녀석을 안심시킨 후 신문지를 깔아 배변을 가리는지 여부를 시험했습니다. 신문지를 깔자 곧 녀석이 용변을 보더군요. 그렇다면 녀석은 유기되기 전 어느 정도 길들여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완전한 성견이 아님에도 신통하더군요.
사료를 사다 놓고, 녀석의 이름부터 지어야 했습니다. 저는 '푸돌이'라는 의견을 냈고, 아내는 '꿈돌이'로 짓자 했습니다. 막내아들은 '콜라'로 하자더군요. 협의 끝에 '꿈돌이'로 정했습니다.
오늘,
오전에 녀석을 미용시키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목줄에 끈을 연결하여 앞장서자 알아서 총총 잘도 따라왔습니다. 동네를 지나면서 어린이 공원에서 한 컷 찍었습니다. 꿈돌이는 저 상태로 제게 왔습니다. 그나마 목욕을 시켜 한결 나아진 모습입니다.
* 동네 공원에서
사진을 보면 꿈돌이가 직사각형의 바른 체형을 가졌음을 볼 수 있습니다. 미견대회에서 아주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로 꼽히는 게 체형입니다. 제가 예전에 호돌이라는 이름의 진도견을 17년간 키워봐서 압니다. 아래 사진을 보면 개의 몸이 앞으로 쏠려 있지요? 이것은 개가 자신감에 차있다는 뜻입니다. 개는 겁을 먹거나 위협을 느끼면 몸을 뒤로 빼는 습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뛰쳐나갈 태세의 개는 건강하면서도 적극적인 성격인 것입니다.
꿈돌이의 미용시간은 대략 두 시간 가량 소요됐습니다. 얼굴, 배, 발끝, 항문 부위만을 깎아내는 부분 미용에 목욕까지 합쳐 2만원, 인식표 비용 6천원을 합쳐 도합 2만6천원이 들었습니다. 미용이 끝나 꿈돌이를 집에 데려오니 완전히 다른 개가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폼이 나더군요. 하하...
꿈돌이의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찍어봤습니다. 녀석이 아주 의기양양해서 벌써부터 우리집에서 제가 최고 서열인냥 까부는 등 난리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배변을 가리는 게 마음에 듭니다. 물론 사람처럼 완전할 수는 없지만 훈련을 통해 숙달시킬 자신이 있습니다.
저녁 무렵, 어쩔 수 없이 또 연습실에 가야 했기에 녀석을 혼자 놔두고 외출했습니다. 곧 있을 연주회에 합주가 예정돼 악보도 익힐 겸 연습실에서 대략 두 시간 가량 체류했습니다. 한편으론 집에 있는 꿈돌이 생각이 커져만갔습니다.
집에 오니 꿈돌이가 예의 반가운 몸짓으로 반깁니다. 녀석은 가족 모두를 아주 잘 따라요. 어느 학자의 글에서 '개가 인간과 공존하기 위해 그들의 조상으로부터 학습받아온 것들을 관찰해보면 정말 대단하다'라고 했던 부분이 생각나네요. 특히 푸들은 소형견 중에서 두뇌가 좋기로 정평이 나있는 개입니다.
어떤 이는 푸들이 사람의 눈치를 민감할 정도로 알아차려 부담스럽고 징그럽다 하지만 억지에 불과합니다. 개에게 인간의 굴레를 씌우고 인간처럼 행동해줄 것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된 발상이지요. 개더러 사람 볼 적마다 몸을 낮추고 예의를 깎듯이 갖추라 한들 개가 압니까? 개는 사람 눈치와 주변 동향에 민감해야만 진정 '개'인 것입니다.
개를 키우려면 개에게도 배려할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집안에만 가둬놓으면 스트레스를 받아 성격이 모날 우려가 있습니다. 가끔 외출하면서 데리고 나갈 필요가 있어요. 또 개가 좋다고 사료 외에 밥찌꺼기, 우유, 계란 같은 영양식을 남용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사료만으로 개에 필요한 영양소를 고루 섭취할 수 있거든요. 사료와 물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사료에만 의존하는 개는 변도 깔끔히 배설합니다. 밥찌꺼기나 우유, 계란을 섞어 먹이면 배변이 고르지 못하고 냄새 또한 아주 역겹지요. 설사로 항문 부위에 잔변을 묻히고 다니는 경우도 있을 수 있구요. 그렇게 되면 인간과 짐승 사이에 허물 수 없는 벽이 쌓여 쉽게 친해질 수 없습니다.
또한 개에겐 주인 외 다른 사람이 주는 먹이는 절대 먹지 못하게 교육시켜야 합니다. 이 사람 저 사람 손이 타면 개의 본성을 잃고 시베리안 허스키나 말라뮤트처럼 '만인이 주인'인 처지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런 개는 사료만 축낼 뿐이지요.
누구보다 꿈돌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고3 막내아들을 빼놓을 수가 없네요. 비록 유기견 출신이거니 앞으로 가족의 일원으로 정성껏 보살피기로 했습니다. 내일 오후 시드니에서 귀국하는 딸이 보면 뛸 듯이 좋아할 것입니다. 예전에 호돌이에 대한 정이 너무나 깊어 개를 키우지 말자 했는데 가끔 개 얘기를 꺼내 모른 척 했거든요. 앞으로 우리집 분위기가 한층 밝아지리라 믿습니다.
꿈돌아, 오래도록 함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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