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영화 <팔도강산>을 보고

펜과잉크 2009. 6. 8. 22:46

 

 

 

 

 

간밤,

EBS-TV로 영화 <팔도강산>을 봤습니다. 최희준 님이 주제가를 부르고, 고(故) 김희갑 황정순 님께서 열연하신 <팔도강산>은 1967년에 개봉됐다고 합니다. 제 기억에 1971년 저희 고향 이층집 바깥마당에서 흑백영화로 보았을 때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그 해를 어떻게 기억하냐면 마을에 엄청난 폭우가 내려 수해지구로 지정된 후 구호물자를 비롯하여 영화 상영 등의 혜택이 있었거든요. 제가 언젠가 동사무소 직원들이 나와 라면 끓이는 법에 대해 교육했다는 것도 그 해입니다. 구호물자로 생전 처음 라면이라는 걸 받았는데 대체 어떻게 끓여야 할지 아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봉지에 써있지 않냐구요? 죄송하지만 저희 고향은 문맹률이 수치 표기 곤란할 정도로 높습니다. 설령 글로 설명이 되었다 해도 양은솥이나 가마솥에 물끓이는 방법부터 도시 구조와는 개념 자체가 달랐지요. 그래 잠바뙈기 공무원들이 나와 구호물자 배급하는 도중에 라면 끓이는 법에 대해 교육하곤 했던 것입니다. 아무튼 <팔도강산>을 최초 감상한 게 그 시기입니다.

 

면사무소 직원들이 자력 발전기를 가지고 와 50미터 가량 떨어진 텃밭에 발동을 걸어놓고 선줄을 끌어다 영사기를 돌려 스크린에 비춰보는 식이었지요. 이층집 안채서 내놓은 절구통을 엎어놓고 영사기를 올려 필림을 돌린 기억이 납니다.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가 '촤르르르'하며 여간 신기한 게 아니었습니다. 중간에 필림이 엉키거나 끊어지면 일순 PAUSE(일시정지)되기도 했습니다. 필림을 잇고, 손가락으로 필터를 두 세 바퀴 돌린 다음 재차 PLAY를 누르면 아까 끊긴 장면이 '촤르르르' 이어지던 <팔도강산>이었습니다. 

 

이층집 바깥마당 영화관엔 일부 털부리랑 포개어 앉았는가 하면 어른 무릎을 베고 잠든 코흘리개도 있었습니다. 중간에 어떤 놈이 오줌 마렵다고 일어서다가 머리통으로 스크린을 가려 욕을 먹기고 했습니다.

"야, 이 씨~, 곤조통 안 치워?"

그러면서 산간의 밤은 깊어가고 영사기 불빛에 박쥐, 사슴벌레, 하늘소, 땅강아지, 나방 같은 것들이 종횡무진 날아다녔지요.

 

그때 보았던 <팔도강산>을 다시 보니 가슴 뭉클했습니다. 김희갑 황정순 부부가 팔도 각지로 출가한 자식들을 찾아 떠나는 내용의 영화는 배우들이 실명으로 등장하는 것 외에도 당대를 누비던 가수들이 나와 노래하는 형식의 특이한 전개로 시선을 끕니다. 예를 들어 김희갑 황정순 부부가 목포 부두에서 제주행 여객선을 탈 때 갑판에서 '목포의 눈물'을 열창했던 은방울자매라든지 경주 불국사에 당도했을 때 현인 님이 부른 '신라의 달밤' 같은 장면 말입니다. 그 전에 서해 매립지 인부인 사위 박노식을 찾아가면서 현장 근로자에게 '여기 박노식이라는 사람이 있소?'하며 묻는 김희갑 옹 만의 개성 넘치는 연기가 흥미를 더합니다. 또한 부산 사는 부자 사위 허장강의 선 굵은 악역 연기라든가 속초 사는 사위가 막걸리에 물을 타서 장인께 드리는 장면 등은 쉽게 떨치기 힘든 시대의 아픔 같은 것들이죠.

 

영화의 종미에 이르러 김희갑 옹이 회갑을 맞습니다. 그리하여 팔도 각지 자녀들이 죄다 서울로 올라옵니다. 그 자리에서 사위 박노식이 장인을 향해 '부산 동서(허장간)가 과동을 했습니다'라고 외치는 장면이라든가, 그 전 김희갑 옹 부부가 설악산을 향해 '과연 성경이로다'하며 감탄사를 연발하는 장면은 언어의 시대성을 실감하게 합니다. 아마도 '부산 동서의 과동'은 '過動'이란 뜻이고, 설악산 성경은 '聖景'일 것입니다. 

 

영화 <팔도강산>에 대한 의견은 저마다 다를 줄 믿습니다. 정치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당시 정부의 대국민 홍보영화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우리같은 무념무상주의자에겐 계몽영화든 뭐든 영화만 좋으면 되는 것입니다. 아, 정말 좋았어요.

 

영화는 위에 나열한 것들 말고도 시사하는 바가 또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시의 정서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는 거죠. 예를 들어 사위 박노식의 집에서 김희갑 옹이 술을 마실 때 옆에 앉아있던 황정순 님이 젓가락으로 안주를 집어 남편 입에 넣어주는 장면은 다시 보기 어려운 주종적 모습이기도 합니다. 또 있지요. 영화가 전개되는 동안 요즘 영화나 드라마와 다른 게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등장 인물들의 성품입니다. 요즘은 TV 드라마에서조차 최소한 한 번은 눈을 부릅뜨며 상대에게 소릴 지르거나 원망과 통한의 눈물을 쏟는 장면이 나오는데 -미친년들, 맨날 뭐가 그리 분하고 억울할까?- <팔도강산>에선 한 번도 그따위 저속 연기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사실 요즘 드라마는 전부 미쳤다 해도 과언 아닙니다. 근래 어느 방송사에서 연변 조선족을 기획 취재하는 자리서 현지 주민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남한 텔레비전 때문에 조선족 사회가 붕괴 위기에 놓였다. 드라마마다 부적절한 관계, 이를테면 불륜과 가정 파괴 같은 비이성적인 사건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일종의 민족반역죄이다. 남한 드라마를 본 조선족 젊은이들이 정통성이고 뭐고 헌신 버리듯 하고 출세만 좇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조선족 전체가 썩었다."

 

조선족의 인터뷰는 많은 걸 생각하게 합니다. 아울러 요즘 인기를 누비는 가수들도 문제입니다. 젊은 남성 가수들을 보면 레즈비언이나 다름 없죠. 박력있고 패기 넘치는 남성상은 간데 없고 얼굴이 온통 그늘 투성이인 채 슬로우풍의 가슴 녹이는 멜로디만 자아낼 뿐입니다. 눈을 지그시 감고 15도 상향 지향으로 느릿느릿한 음률의 노랠 부르는 남성 가수들은 '쿨하게 뜨겁게' 어쩌고 외치는 여성가수 마야보다도 못한 패기를 보여주고 있죠.

 

글이 자꾸 다른 데로 흐르려 합니다만 아무튼 영화 <팔도강산>은 분노와 응징만이 아귀다툼하는 요즘 드라마에 반해 순수했던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아울러 잘살고 못사는 게 마음먹기 달렸더라는 찐빵 최희준 님의 메시지를 통해 세상을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발돋음으로 약진해 나가면 좋을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중간에 오타가 있으면 이해해주십시오. 급타 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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