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노숙자와 고양이

펜과잉크 2009. 6. 29. 12:46

 

 

 

 

 

어제 광화문에 다녀왔습니다. 이왕에 혜화동 - 청계천 4,5가 - 후암동 - 남산 백범공원 코스를 차로 돌았습니다. 백범공원에 차를 받치고 잠시 산책을 했는데요, 공원에 웬 노숙자와 고양이들이 그리 많은지 정말 놀라웠습니다. 여기저기 고양이와 남루한 옷차림의 노숙자들이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겁니다. 제가 벤치에 기대어 캔커피를 마시자 멀리 노숙자 한 분이 제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더군요. 며칠 굶었나 봐요. 그의 시선이 총구처럼 살벌했습니다. 당최 부자연스러워 커피를 마시지 못하겠더라구요. 그래 장소를 옮겨 마저 비웠습니다. 

 

몇 년 전, 추석이 끝난 직후 카메라를 들고 부평공동묘지를 찾았습니다. 혼자 슬슬 약수터쪽으로 걷다가 희한한 풍경을 목격했습니다. 노숙자풍의 남자가 묘역을 서성이며 성묘객이 남기고 간 음식을 거두는 것이었습니다. 건포, 사과, 떡... 뭐 그런 거였지요. 그런데 성묘객의 음식을 노리는 건 노숙자만이 아니었지요. 까치, 고양이까지 생존경쟁에 뛰어들어 경합을 벌이는 것이었습니다. 노숙자가 돌을 던져도 고양이는 팔매질 솜씨를 알고 있다는 듯이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군 시절, 휴가 중 산길을 걷다가 야생고양이와 마주쳤습니다. 고양이가 절 노려보며 피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돌을 집어 고양이에게 던졌지요. 고양이가 근처 노송 꼭대기로 뛰어 오르더군요. 그 나무는 대단히 높았는데 그게 오히려 제 욕구를 자극하고 말았습니다. 돌로 나무 꼭대기에 앉은 고양이를 맞추기로 한 거죠. 저는 계란만한 돌멩이를 집어 힘껏 던졌고 공교롭게도 그 한 방이 '퍽' 소리를 내며 고양이 배에 적중했습니다. 순간 외마디 비명과 함께 고양이가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상황이 되자 일순 후회스럽기도 하고 해서 쳐다만 봤는데 낭창한 가지에 매달린 고양이가 저를 노려보면서 '너 이놈, 언젠가는 복수하고 말테닷!'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 뒤도 안 보고 산길을 내달려 고양이 영역에서 벗어났지요.

 

시골에서 클 적에 뱀을 만나면 그냥 보내주든가 아니면 완전히 죽여 없애버리든가 둘 중 분명히 조치하라고 들었습니다. 동네 선배들 얘기가 그랬어요. 뱀을 괴롭히고 그냥 가면 집까지 쫓아온다구요. 쫓아와서 신발 속 같은 데에 똬리를 틀고 있다가 복수한다는 겁니다. 그 때에도 고양이는 있어 개와 비슷하게 사람을 따랐지요. 그런데 요즘 고양이는 인간으로부터 분리독립하여 자신들만의 생존방식에 길들여진 것 같더라구요. 아무 데나 불쑥 출현하여 심장을 떨게 만듭니다. 굳이 인간과의 종속관계에 연연해하지 않습니다. 혼자 다녀도 얼마든지 끼니를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인간이 아무리 진화해도 새의 양력(揚力)을 터득하지 못하는 바와 같이 간혹 야지에서 노숙자와 고양이를 보면 오히려 고양이가 인간보다 상태계의 우위를 점하는 것 같더군요. 인간은 끼니를 잇기 위해 구걸을 하지만 고양이는 느긋한 폼으로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활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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