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Pen 혹은 文學

애견담

펜과잉크 2009. 6. 22. 10:45

 

 

 

 

아침에 고3 아들을 태워다 주면서 애견 꿈돌이(푸들)를 함께 태웠습니다. 녀석이 어찌나 좋아하는지 보는 마음이 즐겁더군요. 아들 무릎에 얼굴을 비비는가 하면 턱을 괴고 절 응시했습니다. 갑자기 기립자세로 창 밖을 주시하기도 했습니다. 거리의 풍경들이 신기한 모양이었습니다. 유기견 출신으로 우리 집에 들어와 가족의 일원으로 완전히 정착했습니다. 아이들도 꿈돌이를 좋아합니다. 생명은 소중하니까요. 이따가 경기도 광주 갈 일이 있는데 함께 다녀 오려구요. 가끔 바람 쐬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어릴 적, 고향집에 메리란 이름의 암캐가 있었습니다. 무척 영리했지요. 메리는 말만 하지 못할뿐 표정을 통해 충분히 교감할 수 있었습니다. 함께 뒷산을 누비며 사냥을 하고 볏낟가리 허물은 양지쪽 짚단 위에 앉아 벼룩을 잡아주기도 했죠. 자는 공간이 방과 마루 밑으로 달랐지만 인간과 짐승의 경계가 모호할 정도로 친했습니다. 메리는 성견이 되어 새끼를 낳았지만 어떤 놈이 놓은 쥐약을 먹고 울안을 열 바퀴 넘게 초고속 스피드로 돌다가 마루 밑에 뻗어 죽었습니다. 메리가 죽고 한동안 형제들이 우울한 날을 보냈습니다. 그만큼 소중한 개였지요. 

 

성인이 되어 호돌이란 진돗개를 길렀습니다. 수캐였어요. 팔각형 꼴을 갖춘 호랑이 두상이라 제가 이름을 '호돌이'라 지었습니다. 어찌나 용맹스러운지 인근 개를 여러 마리 물어죽였습니다. 자장면 배달부 엉덩이도 물었구요. 그땐 퇴근시간이 일정치 않아 새벽에 귀가하는 날도 잦았는데요, 새벽에 귀가하거니 꼭 호돌이만큼은 챙겼습니다. 새벽에 수봉공원 정상까지 함께 뛰기도 했죠. 궂은 날이 이어지면 베란다 런닝테스트기에 올려 피대를 돌려줌으로써 운동 효과를 노리기도 했습니다. 우유에 날계란을 풀어주는 건 기본이었고 약국에서 사람이 먹는 '원기소'란 영양제를 사다가 먹였습니다. 주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호돌이는 자신감이 넘쳐 늘 위풍 당당한 폼이었습니다. 호돌이는 새도 여러번 잡았습니다. 베란다 난간 사이에서 자세를 취하다가 한 순간 마당으로 뛰어내려 자신의 사료통에 앉은 새를 덮치곤 했지요.  

 

1992년, 호돌이와의 사연을 <애견담>이란 제목으로 담아 제물포수필문학회가 주는 상을 받았습니다. 호돌이는 막내아들보다도 나이가 많았어요. 막내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될 때까지 가족으로 17년을 살았습니다.

 

 

 개를 소재로 문학상을 받다!

 

 

 

호돌이 덕분에 상을 타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래 한 단계 진일보하기로 작정했지요. <隨筆과批評>에도 몇 편을 응모했습니다. 결과가 나오자 한상렬 선생님이 더 좋아하셨습니다. 그래 <隨筆과批評> 등단패보다 제물포수필문학회 기념패를 먼저 받았습니다.

 

 

한상렬 선생님이 주신 기념패

 

 

 

<隨筆과批評>의 대표는 이철호 회장께서 맡고 계셨습니다. 훗날 <韓國隨筆>에 갔더니 거기 대표도 이철호 회장님이더군요. 곧 참모로 있던 남녀 둘이 이탈하여 따로 출판사를 차리는 등 위계질서가 붕괴된 면을 보여주기도 했죠. 그와 유사한 일들이 여러번 있었습니다. 출판사 사장이 찰떡같이 믿고 업무를 위임하면 거기서 수완을 배워 관계를 끊고 따로 법인을 차리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아무튼 이철호 회장님은 한국 수필문단에 큰 업적을 남기셨지만 일련의 부작용 또한 없지 않았습니다.

 

 

이철호 회장님이 주신 상패

 

 

 

아마 등단한 문인들의 수를 헤아린다면 4천5백만 남한 인구 중 4만5천명은 족히 될 것입니다. 천지사방 시인이요 수필가입니다. <純O文學> 박OO 대표 같은 분은 한때 매월 4-5명씩 신인을 등단시켜 세력 확장에 열을 올렸지요. 세력 확장은 사세 확장의 뜻도 됩니다. 출판업계의 대중성이 상업성과 맥을 같이 하니까요. 

 

얼마 전, 이철호 회장님과 문인들이 한 테이블에서 식사하는데 문인 한 사람이 그러더군요.

"수필 등단 안 해요? 이철호 회장님 계실 때 하지 그래요? 올해 꼭 하세요."

말을 듣고 좀 당혹스러웠습니다. 대체 등단이 뭐길래 저렇게 열을 올릴까, 등단하면 사람 위신이 달라지는 걸까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심사평에 '주례사 비평'이나 늘어놓는 주제에... 저희끼리 수필가랍시고 남의 지적이나 충고를 기분 나쁘게 듣는 사람도 있습니다.

"류 선생님, 저도 올핸 수필 한 편 썼어요." 라고 말하는 이도...

 

 

 

 

     시인 되면 어떻게 되는 거유

     돈푼깨나 들어오우

 

     그래, 살 맛 난다

     원고 청탁 쏟아져 어디 줄까 고민이고

     평론가들, 술 사겠다고 줄 선다

     그뿐이냐

     베스트셀러 되어 봐라

     연예인, 우습다

 

     하지만

     오늘 나는

     돌아갈 차비가 없다                   -한명희 ‘등단 이후’

 

 

 

 

얘기가 다른 데로 흘렀네요. 에, 우리집 꿈돌이는 지금 쇼파에서 자고 있습니다. 방울소리 울리며 베란다 드나드는 소리도 들립니다만 신문지에 용변을 배설하기 위한 동작입니다. 베란다 바깥 잔디에 나들이 개가 보이면 컹컹 짖기도 합니다. 방충망을 뚫고 뛰어내릴 듯이 당당합니다. 저는 꿈돌이가 한번쯤 좋은 암캐와 멋진 섹스를 갖길 바라는 바람도 품습니다. 개의 세계에도 시인과 수필가가 있다면 등단한 개들끼리 짜릿한 밀회를 즐길 수 있겠군요. 불륜을 모르는 개는 톰 헹크스의 <포레스토 검프>식 제의에 대해 알지 못할 겁니다. 

'가정을 지키는 열 가지 방법 중에서 배우자가 한 달에 한 번씩 다른 이성을 만나는 것을 허용하라'

 

쇼파에 잠든 꿈돌이를 보니 계절에 맞는 미용을 해줄 필요가 있음을 느낍니다. 생각을 바꿔 꿈돌이의 변화를 위해 홈플러스 개 미용센타를 찾아갈까 합니다. 거기에다 맡기고 광주 다녀와 되찾으면 되겠네요.

 

 

꿈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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