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이 온통 가을입니다. 하늘이 까마득하네요. 오곡백화 익어가는 계절입니다. 재작년인가, 의정부 다녀오는 길에 송추를 지나다 보니 그곳 단풍이 정말 운치 있더군요. 길가에 차 받치고 오줌 싸면서 아무 데서나 며칠 묵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산을 붉게 물들이는 홍엽은 정말 아름다워요.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상념에 잠기니 문득 자월도 워크숍이 떠오릅니다. 지나고 보면 참 많은 것들이 남는 것 같아요. 그날의 일들이 하나 잊혀지지 않으니 말입니다. 팬션 근처 산딸기 따러 갈 때 동행했던 '그녀'와 산딸기 딸 때 곁에 있던 '그녀'와 고기 먹을 때 상추에 싸서 입에 넣어주던 '그녀'의 얼굴, 얼굴들이 주욱 떠오릅니다. 숲에서 따온 엄나무 잎에 잘 익은 삼겹살을 싸 먹던 기억을 영원히 잊지 못할 거예요. 훗날 고향으로 돌아가도 그런 추억을 생각하면 인천이 많이 그리울 것입니다. 추억속의 사람들이 소중하고 보고도 싶겠죠. 과거 인연들은 다 소중하니까요. 그래 지난 삶은 온통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오후엔 광명 KTX역에 다녀올까 합니다. 대구에서 트럼펫 들고 오는 이를 맞아야 해요. Besson이란 Bb 트럼펫인데 1958년도에 생산된 수제 빈티지라고 합니다. 'Vintage'의 뜻이 결코 고전적인 멋에 의존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나 장인의 혼이 깃든 악기는 움직임도 소리도 다를 것이란 기대가 섭니다. 훗날 고향으로 돌아가면 아무도 몰래 초야에 묻혀 기타 뜯고 트럼펫이나 불까 합니다. 중학생 때처럼 마을 뒷산 말랭이에 올라가 아무 데에나 바라보고 뿡뿡 부는 거죠. 숲길을 다닐 때에도 행복이 넘칠 거예요. 훗날...
우리가 묵었던 오크밸리 팬션은 잘 있는지... 입구에 거대한 철제 건축물을 세우던 기억이 납니다. 주차장이었나요? 팬션 발코니에서 내려다 보던 바다엔 작년에 다녀온 덕적도가 그림처럼 떠 있었지요.
창밖의 플러타너스 수림에 미풍이 스칩니다. 플러타너스 그늘 밑을 걸으며 얘기하던 먼 옛날 그녀도 생각나네요.
'30년 동안 전화하겠다는 약속, 그거 지킬 수 있지?'
제게 다짐을 받곤 했죠.
가을은 깊어만 가고, 마음은 과거속에 머물며 아름답고 슬픈 일들을 새록새록 떠올립니다. 여러분의 가을에도 소중한 추억이 자리하길 바랍니다.
버찌 즙으로 그린 추억의 '오크밸리' - 사진 클릭 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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