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저녁 한 때

펜과잉크 2009. 9. 25. 02:04

 

 

 

 

바람 한 점 없는 저녁때입니다. 옛날 이 시간엔 소 데리고 언덕에 올라 풀을 뜯기곤 했는데... 소의 혓바닥은 칡순도 휘어 당기는 힘이 있어 한 웅큼 물고 곧바로 씹어 넘겼습니다. 소는 더러 꼬리로 쇠파리, 똥파리, 날파리를 쫓기도 했습니다. 풀을 뜯을 때마다 귀밑머리 워낭에서 고요한 울림이 퍼져 나갔지요.

 

풀을 뜯기다 보면 멀리 굴뚝의 연기가 낮은 데로 누워 수렁들까지 흘러 뻗었습니다. 서둘러 두렁콩을 베어 눕히는 머슴의 그림자가 보이고, 어디서 맞고 다니는 놈처럼 징징 짜며 마을로 가는 아이도 있었지요.

 

소를 데리고 집에 가면 맛있는 밥상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더러 마당에 멍석을 깔고 둘러앉아 밥을 먹곤 했죠. 밭둑에서 따온 옥수수를 쪄놓고 한없이 얘기꽃을 피웠습니다. 한쪽에 누워 하모니카 불면서 말입니다.

 

족제비 지나간 헛간 뒤로 털부리가 짖으며 뛰어가면 잠시 얘기를 그쳤다가 은하수 넘실거릴 때까지 얘기를 이어갔습니다. 형제들은 멍석에 누운 채 대통령이 되었다가 육군 대장이 되었다가 김춘삼이 되기도 하고, 유지광 김두환 시라소니처럼 종로 무대를 팔 걷고 다녔지요. 그러다가 누가 먼저 잠이 들면 입 비뚤어질까 무섭다고 서둘러 깨워 방으로 갔습니다. 멍석에 잠든 놈 깨우기도 일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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