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공원 충혼탑 근처를 가다가 날카로운 소리를 들었다. 여자 비명 같더니 이내 뭘 부르는 소리였다. '혜순이'를 찾는 여자였다.
"혜순아~, 혜순아~."
다급하다. 소리가 가깝다고 판단한 나는 걸음을 서둘렀다. 곧 여자와 마주쳤다. 불혹쯤 보이는 그녀의 덩치가 성돈(成豚) 바아크셔만하다. 60kg가 100근이라 했던가.
"왜 그러셔유? 뭔 일 있남유?"
내 질문에 여자는 가뿐 숨으로 마지못해 대답한다.
"글쎄 엄니가 문을 열어놔서 개가 없어졌유. 병신 같이 문을 열어놔서…."
그러면서 소리 높여 '혜순아~'를 부르며 주택가로 사라졌다. 무척 비싼 금견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근데 금견(金犬)도 있나? 의문을 재우며 그녀가 온 쪽으로 걸었다. 골목을 돌자 칠순쯤 보이는 노인이 맨발로 주춤주춤 달려온다. 엄격히 말해 걷지도 달리지도 못하는 걸음이다. 나는 또 노인이 궁금하여 물었다.
"아주머니, 뭔 일 있으셔유?"
"아, 예. 딸네 이삿짐 정리해주러 왔다가 시추 개를 잃어버렸유. 삼십분 넘게 찾고 있유."
그러고 있는데 아까 날 지나쳤던 여자가 뒤돌아 온다. 그녀는 저쯤부터 노인을 향해 삿대질이다.
"찾았어? 못찾았어? 아니 병신 같이 왜 문을 열어 개를 놓쳐? 빨리 안찾아?"
그 소리에 노인은 찍소리도 못하고 죄인마냥 골목으로 사라진다. '혜~순~아~' 떨리는 소리도 멀어진다. 젊은 여자는 아직 내 곁에서 씩씩대고 서 있다. 양 손을 허리에 꽂은 채….
문득 그녀를 보며 바아크셔 성돈 돼지를 잡으면 살코기가 몇 근이나 나올까 생각했다. 대가리는 없고 고기만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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