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아들의 담임 선생님

펜과잉크 2009. 10. 18. 12:17

 

 

 

 

 

법정 스님의 <山房閑談>을 아시지요? 거기서 착안하여 제목을 정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언 삼경의 끝에 이르렀네요. 오동잎 지는 고향의 가을밤이 그리워집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로 시작되는 노래가 <스승의 날> 의식곡입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과 같을진대 엄격히 말해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스승이라는 표딱지 붙이고 못된 짓거리 하는 것들도 있잖아요. 간혹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세상은 긍정적인 요소들이 훨씬 많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이나마 존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천고등학교 3학년생 막내아들이 몇 군데 수시 면접을 보고 왔습니다. 천안 백석대학교, 온양 호서대학교, 대전 중부대학교에 원서를 넣었습니다. 전부 경영학과입니다. 대학교 이름을 보면 대략 성적을 가늠할 수 있을 겁니다. 공부를 잘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잘하는 게 따로 몇 가지 있으니 아비로서 아쉬움은 없어요. 중부대학교 면접 때 '경영학과에 지원한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경영학을 공부해서 수입자동차회사 관리직에 근무하고 싶다'고 하자 교수가 다시 쳐다보더랍니다. 하하...

 

오늘도 아들은 제 차를 운전하고 선학동 뉴서울아파트 친구 집에 놀러갔습니다. 충청도 시골 말로 '밤마실'을 간 셈이지요. 도시에서 성장한 스케일에 맞게 차를 몰고 마실 갔네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들의 방을 둘러보며 모기나 파리는 없는지 창문은 닫혔는지 등을 확인했지요. 그러다가 책상에 놓인 작은 메모지를 발견했습니다.

 

 

 

 

 

 

쪽지를 읽고 아들의 여자 친구 정민이란 학생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필체가 요즘 세대들과는 다른 점에 의문의 꼬리가 바뀌었습니다.

'누굴까?'

커지는 궁금증에 아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메모지 출처를 묻자, 담임 선생님이 써주신 거라 하더군요. 전화를 끊고 생각하니 담임 선생님이 그토록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학기 초, 선생님과 통화하면서 언제 한 번 뵙겠노라 한 게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책만 보내 드렸지요. 책갈피에 편지 한 통 써 드린 기억이 납니다만 아무튼 지금까지 뵙지 못하고 있습니다. 졸업식이 있기 전에 꼭 뵈려고 생각중인데...

 

지금까지 매년 아들의 담임 선생님과 인사를 나눴습니다. 성적 잘 나오게 해달라고 청탁한 적은 없어요. 그냥 부담 없이 뵙는 거죠. 이런저런 대화와 함께 자식을 똑바로 가르쳐 달라고 부탁드립니다. 남자 선생님보다 여자 선생님 뵙기가 더 편하더군요. 바른 매너와 깨끗한 에티켓으로 만나면 서로 오래 기억할 수 있지요. 나이 어린 여선생님들 앞에선 갖춰야 할 것이 많습니다. 아무튼 아들의 지난 스승님들이 고마울 뿐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분은 한 분도 없었어요. 다들 훌륭하신 가치관으로 아들을 가르쳐주셨지요. 감사합니다. 술, 담배은 물론 문란한 이성교제 같은 거 하지 않으며 당구, 바둑, 장기, 화투, 포커 같은 걸 모르니 그것으로 족합니다. 인터넷도 간단한 검색 정도로 끝내지요. 그러면 되는 겁니다. 광화문 세종대왕 같은 인물을 바라겠습니까? 세종대왕도 말년엔 매독에 걸렸잖아요. 뭐,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밤이 깊었네요. 혼자 찌개를 데워 책상 앞에 놓고 물컵에 소주를 따라 'OO처럼' 반 병을 비웠습니다. 마시다 남은 소주병은 마개를 꼭 닫아 거꾸로 보관하면 되고 찌개는 아침에 밥상에서 다시 만날 것 같습니다. 깨끗이 덜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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