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남자의 장식품

펜과잉크 2010. 2. 19. 09:52

 

 

 

 

 

허리에 열쇠고리를 걸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흔히 남자의 벨트고리에서 목격되죠. 걸을 때마다 찰랑찰랑 소리가 납니다. 두꺼운 겉옷을 입는 겨울철은 좀 낫습니다. 여름철, 반팔 상의에 바지를 입고 다니면서 벨트고리에 열쇠뭉치를 매달고 다니면 보기 영 그렇습니다. 제가 예전에 어느 인천 문인 까페에 이와 관련된 글을 썼더니 그런 걸 뭐라 한다고 태클을 걸던데, 그 사람은 그냥 평생 벨트고리에 열쇠뭉치 가득 달고 사십시오. 아파트 열쇠, 자동차 열쇠, 사무실 열쇠, 사무실 책상 열쇠, 사무실 화장실 열쇠, 사무실 케비닛 열쇠, 금고 열쇠... 그러고 보니 인생의 열쇠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옛날에 해병대 군인들 휴가 나와 다니는 걸 보면 바지자락에 구슬링을 걸어 보폭을 내디딜 적마다 찰랑찰랑 소리가 나곤 했습니다. 이거 말짱 도루묵 똥폼입니다. 시선을 주목 받기 위한 장식품에 불과하지요. 군인의 지급품 어디에도 없는 품목입니다. 침투 개념의 부대원들은 M-16이나 K1-A 자동소총의 멜빵고리까지도 고무줄로 둘둘 감아 일체 소리가 나지 않도록 무장합니다. 우리 까페에도 현역 출신들이 많아 '기도비닉'의 중요성에 대해 아시리라 믿습니다. 해병대가 아니라 해병대 할아버지라도 바지자락에서 쇠구슬소리 찰랑찰랑 나는 상태로 전투에 참가했다간 일등으로 총 맞아 죽을 겁니다.

 

승용차가 필수품인 요즘 세상은 차에 신경 쓰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2,900씨씨 120마력 뉴코란도 차량에다 온갖 장식을 하기도 합니다. 정작 차량의 성능엔 관심 없습니다. 가령 엔진 기능을 향상시킨다거나 순발력을 보완하는 데엔 무심합니다. 눈으로 보이는 외형에만 집착을 하지요. 헌병전우회 표딱지를 붙이거나 마이너스휠을 장착하거나... 점화 플러그 하나만 노후돼도 차의 성능이 떨어진다는 점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아요. 마이너스휠은 연비를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악재입니다. 어떤 이는 차량 지붕에 캐리어를 장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한국 사회에서 캐리어에 짐을 싣고 다니는 경우는 드물지요. 없습니다. 고속주행시 바람의 저항을 받아 연비를 떨어뜨리는 캐리어를 돈들여 달고 다녀야 멋있는 줄로 압니다. 차량 사이더미러가 받는 바람의 저항이 16%가 된다하여 연비 절감의 원인으로 분석한 전문가가 있는데요, 아무튼 외형만 중시한다는 게 좀 그렇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자의 지갑을 말하고 싶네요. 지갑은 롱지갑과 반지갑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갑을 쓰지 않습니다만 아무튼 남자의 지갑도 멋과 품위를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필수품입니다. 그런데 반지갑을 바지 뒷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궁둥이 한쪽이 불룩합니다. 남자의 지갑엔 무엇이 있을까요? 현금 20만원 내외,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부적, 신용카드 3매, 주유소 오일카드, 병원 진료카드, 계원들 연락처가 인쇄된 쪽지, 초등학교 동창들 연락처, 이런저런 사람들의 명함... 대개 그렇습니다. 저 상태로 지갑을 반으로 접어보세요. 지갑을 바지 뒷주머니에 넣으면 어떨까요? 자꾸 남의 말을 인용하는 것 같은데 남자의 바지 뒷주머니 지갑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경고한 의사가 있습니다. 지갑을 상시 바지 뒷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사람에게서 기형적 체형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오랜 시간 의자에 앉아있거나 장시간 차를 운전하는 분이라면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엉덩이 한쪽이 지갑에 걸쳐있는 경우라면 척추에 미치는 힘의 균형이 달라질 것입니다.

 

장식품보다 내적인 수양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저희 직원 중에 부고장을 작성하면서 고인의 함자 옆에 '아들 子'를 쓰다가 '글자 字'로 바꾸라고 지적하는 동료에게 '아들 子'가 맞다고 우기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정말 무식하고 한심해보이더군요. 그 사람이 목에 금목걸이 세 냥을 걸면 어쩔 것이고 롤렉스 팔목시계를 차고 다니면 뭐할 겁니까? 그래도 지적인 수준을 요하는 문인의 세계는 장식품에 연연해하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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