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EBS-TV를 통해서 본 영화 <Nicholas and Alexandra>는 나로선 충격에 가까운 것이었다. 세 시간동안 꼼짝없이 감상했는데 지금도 마지막 장면이 눈에 선하다. 예전에 몽블랑에서 나온 만년필 '니콜라이 2세'를 고가에 구입하여 소장한 적이 있는데 그 역시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에 매력을 느끼는 상태에서 니콜라이 2세의 비극에 동정심이 일었던 결과이다.
원제: Nicholas and Alexandra
감독: 프랭클린 J. 샤프너
출연: 마이클 제이스톤, 자넷 수즈만
제작: 영국
줄거리
1904년 슬하에 딸만 넷을 둔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스 2세(마이클 제이스톤 분)와 독일 출신의 러시아 황후 알렉산드라(자넷 수즈만 분)는 막내아들인 알렉시스 황태자의 탄생을 몹시 기뻐하지만 알렉시스가 혈우병에 걸린 사실을 알고 슬퍼한다. 러시아의 황후인 알렉산드라는 시베리아 출신의 농부이자 수도자인 그레고리 라스푸틴이 죽어가는 알렉시스 황태자를 살려내자, 알렉시스의 혈우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라스푸틴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황후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은 라스푸틴은 문란한 생활을 하며 러시아 정부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다.
한편 러시아에 혁명의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니콜라스 2세는 부동항을 얻기 위해 일본과의 전쟁을 일으키지만, 전쟁에서 패한 뒤 러시아 제국은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러일 전쟁 패배 이후, 굶주림에 시달리던 시민들이 대규모 폭동을 일으키지만, 니콜라스 2세가 자리를 비운 사이, 군대의 과잉 충성으로 6백여 명에 달하는 무고한 시민들이 사살되고 수천 명이 다치는 이른바 ‘피의 일요일’ 사건이 발생했으며, 이 사건은 러시아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이후 황제의 가족들은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된다.
왕권신수설을 신봉하던 니콜라스 2세가 시민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오히려 독일을 공격하기 위해 군대 총동원령을 선포하자, 활발한 지하 활동을 벌이던 공산 세력은 혁명을 꾀한다. 라스푸틴이 살해된 후, 니콜라스 2세는 러시아 국회의 요청에 따라 황제의 자리를 포기하고, 레닌 주도의 볼셰비키 사회주의 공화국이 수립된다. 그 후 시베리아의 한 민가로 쫓겨나 엄격한 감시를 받으면 생활을 하던 니콜라이 2세의 가족들은 1918년에 모두 총살된다.
주제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스 2세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로마노프 왕조의 몰락을 그린 대하서사극. 니콜라스 2세는 사랑하는 아들의 혈우병과 언제 닥칠지 모르는 제국의 붕괴 위험을 끌어안고 비운의 삶을 살아야 했다. 퓰리처상 수상작가인 로버트 K. 매시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살인마로 알려진 니콜라스 2세의 인간적인 측면과 황실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감상 포인트
아들이 혈우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로버트 K. 매시는 혈우병에 걸린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혈우병을 어떻게 대처하는지 자료를 찾던 중, 역사상 가장 유명한 혈우병 환자였던 러시아의 마지막 황태자 알렉시스와 그의 부모인 니콜라스 2세와 알렉산드라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결국 영화는 아들의 혈우병을 극복하기 위한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의 노력이 세계사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출발한 셈이다.
어떤 역사학자들은 알렉시스의 혈우병 때문에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으며, 라스푸틴이 없었다면 레닌도 없었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외아들 알렉시스의 혈우병으로 절망에 빠져 있던 황후 알렉산드라가 시베리아 출신의 신비주의자인 라스푸틴에게 의지하고, 황후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던 라스푸틴이 알렉산드라를 통해 러시아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결국 왕조의 멸망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러시아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고, 비운의 삶을 살았던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스 2세의 삶을 생각하며 영화를 감상하면 좋을 것이다.
감독
영화 <혹성탈출>과 <빠삐용>의 명감독 프랭클린 샤프너. 그는 1920년 5월 30일에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컬럼비아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브로드웨이 극단에서 활동했다. 1961년에 찍기 시작한 첫 번째 영화는 완성하지 못하고, 프로듀서가 죽는 바람에 우여곡절 끝에 맡게 된 영화 <스트리퍼: The Stripper>(1963)로 감독 데뷔했다. 샤프너 감독은 <혹성탈출: Planet of the Apes>(1968)로 전 세계적인 흥행을 거두는 데 성공했는데, 당시 원숭이가 인간을 지배한다는 흥미로운 소재와 너무나 사실적인 원숭이 분장, 그리고 특수효과로 개봉하자마자 영화팬들 사이에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 후 <패튼 대전차 군단: Patton>(1970)으로 1971년 오스카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했고, 그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빠삐용: Papillon>(1973)은 인간고립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준 작품으로 우리나라 영화팬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다음 작품인 <세상사에 밝은 섬: Islands in the Stream>(1977)을 만든 후 <브라질에서 온 소년: The Boys from Brazil>에서 캐스팅 문제로 난항을 겪었지만, 꾸준히 영화를 만들어서 1980년대 초 <스핑크스: Sphinx>(1981)와 뮤지컬 영화인 <예스, 지오지오: Yes, Giorgio>(1982)를 찍었다.
프랭클린 샤프너 감독은 배우들로부터 최고의 연기를 끌어낼 줄 아는 명감독이었으며, 웅장한 서사 영화를 만들어 내는 데 뛰어난 재능을 가진 감독으로 영화사에 한 획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