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전기면도기

펜과잉크 2010. 3. 13. 14:20

 

 

  

 

 

아내로부터 질레트사에서 나온 전기면도기를 받은 적이 있다. 의심이 많은 -직업병의 일종으로 판단됨- 나는 전기면도기로 밀 정도로 수염이 많지 않은 사람에게 웬 전기면도기일까 생각했다. 다른 사람에게 줄 선물로 준비했다가 여의치 않자 내게 내민 건 아닐까? 어떤 후배 직원놈처럼 양주 들고 사무실 들러 상사를 찾다가 출장 중이라 하자 '그럼 선배님이 가지세요'했던 일이 떠올랐다. 아무튼 전기면도기를 받긴 했는데 당최 쓸 일이 없었다. 거웃털 밀 일도 없고... 콧수염 몇 개, 텃 수염 몇 개는 1회용으로 두어번 밀면 끝이니까... 그래 진열장에 처박혀 있다가 언젠가부터 큰아들이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전기면도기 사용법을 모르는 것 같다. 

 

아들뿐이 아니다. 전기면도기 쓰는 사내들 중 많은 이들의 사고방식이 잘못됐다. 이놈들이 전기면도기로 들들 벌초를 하면서 거실과 방실, 욕실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이다. 그럼 면도기 날에 잘린 털들은 어디로 갈까? 면도기 내부로 흡수될까? 물론 일부 흡수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공중으로 날려 흩어진다. 궁금하다면 하얀 와이셔쓰 차림으로 전기 면도기를 써보면 안다. 앞지락으로 잔털이 마구 떨어진다. 이걸 새대가리들이 모르는 것 같다. 어떤 사내는 신호등 앞에서 운전대 잡은 채 후사경 보며 면도질을 한다. 여름철 에어컨을 켜놓은 상태로 이 짓을 하면 잘게 부숴진 입자들이 옆사람 호흡기로도 들어갈 것이다. 그럼 어떻게 될까? 일반 음식물처럼 잘 소화되어 똥으로 배설될까? 결과는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나란 사람이 지나치게 까다로울지 모르나 헤어드라이기도 개방된 거실에선 사용하지 말라 이른다. 거울 앞에서 머리칼을 휘날리며 드라이하는 게 왠지 경망스러워 보인다. 절대 멋있어 보이지 않는다 이거다. 저는 제 순한 모발이 드라이 열풍에 나폴거리는 게 특별하다 믿을지 모르나 바라보는 사람 중엔 염장 뒤틀리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런 건 방 한쪽에서 조용히 화장할 때 곁들이는 거다.

 

가끔 목욕탕 가서 보면 탈의실에서 팬티를 털어 입는 놈들이 있다. 허리끝 부분을 양손으로 잡고 막 입으려는 자세를 취하다가 냅다 허공에 탁탁 턴다. 베란다에 빨래 널 때처럼. 그럼 어떻게 될까? 일껏 목욕하고 나와 옷 입으려던 사람의 기분부터 망가진다. 다시 목욕탕으로 들어가고 싶다. 그 놈의 팬티에 묻은 오줌방울 소금찌꺼기와 똥가루 같은 것들이 허공에 풍산되어 내 호흡기로 들어올 것만 같다. 그 놈의 팬티에 붙어 기생하는 사면발이 성병 세균 같은 것들이 날아오는 것 같다. 아, 순간 한 대 패 버리고 싶다. 근데 목욕탕에서 팬티 터는 놈들이 의외로 많다. 사자나 원숭이 같은 애들도 남들 앞에 통가루를 털진 않을 것이다. 짐승보다 못한 놈들...

 

면도기 얘기가 똥가루로 번졌네. 자중하고 연습실에나 다녀와야겠다.

 

 

 

 

 

'雜記 > 이 생각 저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움  (0) 2010.04.04
아들을 기다리며   (0) 2010.03.24
오십보 백보   (0) 2010.03.08
니콜라스와 알렉산드라 (Nicholas And Alexandra, 1971)  (0) 2010.03.07
휴대폰 예절  (0) 2010.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