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소중한 기억들

펜과잉크 2010. 4. 4.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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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자랄 때 시골의 교육환경이 매우 엄했음을 세상 살며 수없이 느낀다. 가령 밥을 먹더라도 격에 맞게 먹어야 했다. 어른이 수저를 들기 전엔 먼저 먹지 못했고, 소리내어 먹어서도 안되며 반찬을 뒤적이거나 헤쳐먹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밥상엔 국 혹은 찌개가 필수로 등장했고 음식을 다 먹은 후엔 수저를 가지런히 내려놓되 물로 입가심하고 빈그릇에도 살짝 물을 따라놓은 걸 잊지 않았다. 국이나 찌개 없이 맨밥을 꾸역꾸역 먹는 자체를 혐오했다. 그런 건 거지들이나 하는 거라고 배웠다. 한때는 어른들보다 먼저 수저를 내려놓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는 줄 알았다. 그래 마주 계신 아버지 식기를 훔쳐보며 속도를 맞췄던 것이다. 다리가 부러지지 않는 한 정좌 아닌 자세는 있을 수 없었다. 어른 앞에선 트림도 안되었다. 할머니가 주시는 건 모두 두 손 모아 공손히 받는 걸로 알았다. 부모님이 주시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남자들은 직사각 밥상에 앉되 아버지가 아랫목쪽에서 봤을 때 오른편에 앉으셨고 내가 웃목쪽 대각에 앉았다. 내 옆, 그러니까 아버지 정면엔 첫째아우가 앉았다. 아버지 옆엔 둘째아우가 자리했다.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어머니와 누님과 여동생은 작은 밥상을 따로 차렸는데 반찬 수나 내용면에서 사각밥상과 많은 차이가 있었다. 어떨 땐 밥상 대신 쟁반에 대충 얹어놓고 먹었다. 고등어조림이 올라온다고 가정할 때 사각밥상엔 살점 많은 중간 부위가 놓여졌고 쟁반엔 머리와 꼬리부위가 놓여졌다. 그래 꼬리 부위 살점을 뜯는 여동생이 안쓰러워 몸통 살점을 뚝 떼어 내려주기도 했다.

 

식사할 땐 정숙한 분위기로 우리는 대개 아버지 말씀을 듣고 대답하는 식에 그쳤다. 대화는 주로 부모님끼리 간단한 형식으로 이어졌다. 밥을 먹을 땐 잔소리가 많아서도 안된다고 배웠다. 그렇게 살았다. 봄여름가을겨울 사시사철 변함이 없었다.

 

우리집엔 아들이 둘 있는데 큰아들이 스물일곱살로 군대를 전역하여 대학교 마지막 학년에 재학중이다. 둘째아들은 올해 대학교에 들어갔고... 근데 이 둘은 많은 차이가 있다. 큰아들이 나를 만난 건 여섯살 때다. 제 누나랑 함께 엄마를 따라 왔으니... 근데 지금 와서 후회되는 부분이 자식 교육에 관한 부분이다. 가정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했다. 이는 아내 눈치가 결정적이었다. 아내는 처음엔 자신이 데려온 자식들에게 따뜻하고 엄격한 아버지 모습을 보이라 강조했지만 실상 따뜻한 쪽만 좋아할 뿐 엄격한 쪽엔 서운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에게 싫은소리를 하지않게 되었다. 아내가 싫어하니 어쩔 수 없었다. 아이들에게 약이 될만한 소리 해놓고 아내와 서먹해지는 걸 원치 않았던 것이다. 결국 아이들은 방치된 꼴로 자랐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지금에 와서 느끼는 게 많기 때문이다.

 

일단 두 아이는 나이만 스물아홉과 스물일곱일 뿐 여전히 철부지들이다. 철부지라기보다는 교육이 덜됐다. 기본이 채 갖춰지지 않은 것이다. 식탁에 끼니가 차려지면 그 즉시 앉아 먹기 시작한다. 이는 딸이 더욱 심하다. 그 아이는 자기가 최고인 줄 안다. 어른에게 먼저 '식사하시라'는 형식적인 멘트조차 하지 않는다. 일단 먹고 본다. 큰아들도 마찬가지다. 밥을 소리내서 먹고 반찬을 헤쳐서 골라 먹는다. 고등어조림이 있다 가정하면 몸통을 이리저러 굴려가며 맛있는 부위만 골라 먹는다. 마음 안드는 상부나 꼬리쪽은 한쪽에 제쳐놓는다. 김치 한 가닥을 먹더라도 처음 것은 옆으로 제쳐놓고 다음 걸 고른다. 찌개를 떠먹을 때도 다르지 않다. 수저로 찌개를 한 두 번 뒤적여놓고 세 번째쯤 뜨는 걸 입으로 가져간다. 그러니 내 눈엔 그 찌개를 떠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 아내는 점심때에도 먹을 수 있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내 눈엔 더 이상 보기 싫은 찌개인 것이다. 수저로 뒤적거린 찌개를 무슨 맛으로 먹나? 비위생적이라는 선입감에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두 아이에게 꺼낼 수 없는 말을 막내아들에게 들려준다. 누나 혹은 형을 특정지을 순 없는 노릇이므로 예를 들어 설명해주는 것이다.

"지석아, 밥 먹을 땐 어른께 먼저 반드시 진지 잡수라는 말을 하고 어른이 앉아 수저를 들었을 때 뒤따라 드는 게 원칙이란다. 밥 먹을 땐 얌냠쩝접 소리를 내서도 안된단다. 찌개나 국도 후룩후룩 소리내서 먹으면 안된단다. 반찬 그릇을 헤쳐놓는 것도 안돼. 너는 알고 있지? 어른 앞에서 '꺼억' 하고 트림하는 것도 예의 아니라는 거! ...... 어른이 집에 있을 땐 쇼파에 누워도 안된단다. 팬티만 걸치고 왔다갔다하는 것도 안되고! 너도 알고 있지? 어른 계신 집안에 팬티만 찬 채 왔다갔다 하는 게 얼마나 흉한지..."

 

어느덧 막내아들은 누굴 의식해 지적하는지 눈치채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누나와 형을 상대로 참견하는 결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누나, 밥 먹을 땐 먼저 어른께 식사하시라 하는 거 몰라? 형은 왜 자꾸 반찬을 헤쳐가면서 먹는데? 그리고 소리 좀 안내고 먹을 수 없어? ...... 속옷만 입고 거실 다니는 것 좀 고쳐. 쇼파에 벌렁 누워있지 말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우려되는 것 중 하나가 훗날 남의 자식이랑 가정을 꾸렸을 때 그 부모 앞에서 보일 행동거지들에 관한 것들이다. 딸이나 아들이 사돈이랑 식사하면서 소리를 내거나 반찬을 헤집는다면 그들이 뭐라 할 것인가. 자식을 타이르기 전에 부모부터 흉볼 것이다. 가정교육이 덜 됐다고 말이다. 인생을 살면서 어릴 때 보고 들은 것들이 소중한 자산임을 수없이 느낀다. 물질보다 훨씬 값진 양식을 물려주신 부모님께 늘 감사드리며 산다. 고향집에서의 어릴 적 기억들이지만 내 삶의 표지처럼 각인되어 있다. 소중한 기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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