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수레바퀴가 몰고 온 인간성 상실의 시대

펜과잉크 2010. 7. 20. 12:40

 

 

 

 

 

 

내 나이 약관에 이르기까지 고향에 살면서 남들 하는 일은 다 해봤다. 딱히 해보지 않은 게 있다면 쟁기질 뿐이다. 소 몰고 논밭을 갈거나 써래질하는 일은 전형적인 농사꾼의 길이라하여 어머니가 못하게 하셨다. 그것 말고는 내 몸이 뉘집 머슴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지난 삶을 비관하는 건 아니다. 농사를 본업으로하는 부모님을 도와드렸다는 자부심이 훨씬 크다. 

 

해동머리에 들판에 서서 한 해 농사를 구상하면 가을걷이 볏가마가 눈에 아른거렸다. 두렁 입힐 즈음이면 바지 걷고 논에 들어서기가 난감할 정도로 물이 차가웠으나 마음이 지레 쌀가마에 가 있으니 복상뼈 부위로 철 이른 거머리가 붙는다 한들 한없이 밉다고만 할 것인가. 앞서 쇠스랑으로 두렁의 흙을 걷어올리면 삽으로 뒤따르며 흙손 문지르듯 모양을 내어 한 해 일을 시작했다. 두렁이 튼튼해야 물꼬 도둑도 없을 것이었다.

 

그 무렵, 나는 수렁들 다섯마지기 논 가운데 서서 멋진 청사진을 그렸다. 훗날 객지로 가면 자가용 한 대 타고 고향길을 문지르듯 굴리고 오자고! 마을 사람들이 우러러 볼 게 아닌가. 그런데 지금에 와서 보면 자가용은 과거 TV 수준보다 못하다. 주말이라든가, 고향에 가 보면 집집마다 승용차 한 두 대 씩 없는 집이 없다. 장가 간 놈, 시집 간 놈, 이혼한 놈, 재혼한 놈... 신분을 떠나 자가용만은 필수품으로 갖추고 산다. 다만, 차를 운전하고 다니면서 느끼는 게 있다. 왕복 1.5차선의 -시골길은 대개 왕복 1.5차선이다 - 시골도로를 가까스로 비켜가면서 서로 운전석 보기를 꺼리는 것이다. 눈이 마주쳤다가 인사없이 지나치는 어색함보다 아예 모른 척 지나치는 게 편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어쩌다 운전석으로 눈이 가서 앞집 살던 선옥이가 앉은 걸 보고서도 '어?' 하다가 휑 놓쳐버리는 시대가 되었다.

 

과거엔 어땠는가? 이십대 중후반 시절만 해도 면소재지 버스 정류장에 내려 십리 길 마을로 향하는 동안 아무 데에서나 사람과 마주쳤다. 그 시절 인사라는 건 눈 앞의 대상에게만 건네는 게 아니었다. 시골 들녘 서너마지기 논 쯤은 가볍게 건너뛰는 인사였다. 

"거기 아저씨, 경자 아부지 맞으시쥬~?"

"자네는 아랫말 거시기~?"

"예에~!"

"굉일에 일하러 오남~?"

"에에~!"

"공부허느라 일허느라... 그려~! 어여 가 봐~!"

"경자는 댕겨 가유~?"

"걔도 바뻐~! 신학대학교 가서 말여~!"

"신학대학교 무슨 꽈래유~?"

"목사자동과... 성경책이 교과서랴~! 예수님이 교장이고~!"

"졸업허면 진짜 목사님 되겄네유~?"

"몰라~! 후제 만나먼 찬찬히 물어봐~!"

"예에~!"

그러면서 갓골 산허리를 지났다. 이번엔 절골 모퉁이 돌아 다음 사람과 만났다. 논두렁 풀을 깎는 병기 형 같은 이 말이다.

"형님, 수고 많습니다."

"너 오냐?"

"근데 형님 낫질허시는 거 보니께 숙련됐다고 하기는 좀 그렀네유. 육철낫*가지고 풀 치시는 거 보니께유. 그런 데는 왜낫*으로 가볍게 싹싹 쳐도 되는 거여유."

"왜낫은 장에 갈 때 면도하면서 쓰고..."

"예비군 훈련은 없었쥬?"

"동네 소대장이 자체 소집혀서 서낭고개 방공호 보수허는 걸로 끝났어. 어떤 새끼가 방공호 안에다 똥을 바가지로 싸놔서... 너는 아부지가 막걸리 값으로 대신허신 거 같던디?"

"알었유."

대답해놓고 또 길을 갔다. 중간쯤 고추밭에 들앉은 아주머니한테도 말을 붙이고 간벌한 솔밭에 묶인 황소 불알도 구경하면서... 세월 바쁠 게 없는 몸이었다.

 

한편 새참을 준비하시는 어머니도 상황에 맞춰 움직였다. 아버지 일하시는 수렁들 논을 살펴 근처에 다른 이가 보이면 대접과 젓가락을 더 챙겼다.

"중뜸 정구... 사기점골 종환이... 응달집 재식이 아버지도 있고..."

나도 일하다 보면 접경 논에서 새참을 풀면서 마다하기 곤란할 정도로 호출을 했다. 안 오면 쫓아오겠다는 식이다. 시골 인심이라는 게 그 정도로 후덕했다. 요즘은 어떤가? 들판에 일을 가면서도 차를 몰고 간다. 연기통으로 붕붕 소리를 내고 동네 바닥이건 산비탈 오르막이건 있는 마력을 다 쏟아낸다. 주말에 도시에서 온 자손들은 아이들까지 태워 무리로 이동한다. 일터까지 차로 갔다가 새참이나 끼니때를 맞으면 차로 슁 달려 면소재지 냉면집에서 뚝딱 해치우고 온다.

 

차가 생기면서 한 마을 인사성도 메말라갔다. 차를 세우고 내려 인사하는 게 왠지 귀찮다고 느껴진다. 그냥 그대로 편히 앉아 악셀레이더를 꾹 밟고 싶다. 굴러가는 차 안에 있으면서도 갈 길이 바쁘다. 그리하여 이제는 차가 몇 대씩 서있는 주말에도 이웃끼리 서로 면상 보기가 편치 않은 사이가 되었다. 피차 조용히 머물다 가면 끝이다. 이웃집까지 걸어다니면서 인사 나눌 게 없다. 무슨 큰일처럼 버겁다.

 

문명은 기존의 가치관을 무너뜨림으로써 또다른 세상를 여는 것 같다. 알에서 깨어나 날아가는 새처럼. 새는 신에게로 향하되 그 신의 이름이 아프락사스라 했던가? 신비주의적 전일성을 상징하는.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시키는 상징적 과제를 가지고 있는 신성처럼 문명 또한 삶과 죽음, 축복과 저주, 참과 거짓, 선과 악, 빛과 어둠 등 양극적인 것을 포괄하는 건 아닌지... 차에 끌려다니며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직면해 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차가 인간의 심장에 터널을 내고 저희끼리 종무진 관통해 다닌다.

 

 

 

 

 

* 육철낫(肉鐵-) : [명사] 같은 말: 조선낫.

* 왜낫(倭-) : [명사] 날이 얇고 짧으며 자루가 긴 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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