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직장은 근무와 휴무가 분명하다. 근무 중일 땐 눈코 뜰새없이 바쁘다가도 휴무가 주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든 게 '뚝' 끊어진다. 휴무일엔 사무실 전화가 오는 일이 거의 없다. 지침이 그렇다. 휴무를 맞아 쉬는 사람에게 전화하지 말라 한다. 업무 성격도 인수인계만 확실히 이루어지면 누굴 찾을 일이 없다. 그리하여 쉬는 날은 두 다리 쭉 펴고 지낼 수 있다. 사람이 심리적으로 압박감에 가위 눌리지 않고 산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경험해본 사람은 안다. 한시적으로나마 업무에서 해방되어 미완의 용무나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나는 옷이 많은 편인데 20년 정도 된 걸레 스타일의 헌옷부터 비싼 양복까지 다양하다. 근데 양복은 연중 입을 일이 거의 없다. 대개는 청바지에 캐주얼한 외모를 즐기는데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은 군복 차림이다. 그렇다고 쿠바 카스트로처럼 군복으로 한 벌 차려 입는 게 아니라 바지와 군화 정도를 신고 상의는 반팔 티셔쓰로 마감하는 식이다. 군복은 편해서 좋다. 우리나라 군복보다는 미군용 군복이 좋다. 미군은 지급품마다 최상품 것들을 쓴다. 우리나라처럼 떨이용품 비슷한 수준이 아니다. 평소 내 옷차림을 보면 직업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은 '공무원' 혹은 '공직자' 같은 것들이다. 시든 수필이든 업무와 관련된 글은 쓰지 않는다. 싫다! 까페 게시판에 곧잘 '특수부대' 어쩌고 하지만 실상 활자화되는 책자엔 '특수부대' 소리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공무원' 소리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목에 칼을 씌우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다. 만일 내가 서점에 가서 어떤 시집을 뽑아 작가 프로필을 읽을 때 그 책의 저자가 공무원이라면 절대 사지 않겠다. 공무원은 사고 자체가 타성에 젖어 시든 수필이든 미문(美文)만 좇는다. 만날 그렇고 그런 글을 읽어봤자 도움될 게 없다. 재활 불가능한 언어의 쓰레기, 공해... 어떤 사람은 현직 시절 우수공무원으로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고 책을 낼 때마다 프로필로 써 먹는다. 개인의 영광일지 모르나 독자 입장에서는 하나도 우러러보이지 않는다.
오프라인에서도 마찬가지다. 만일 누가 공무원 어쩌고 하면 그 순간부터 경계를 하게 된다. 좋은소리든 싫은소리든 직업을 들먹이는 자체가 싫다. 공무원이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잠재의식의 문제이지 매사 공무원 소리를 공염불 비슷하게 듣고 살 필요는 없지 않은가. 정말이지 신물 나도록 들어온 잔소리다.
공무원 소리가 나와 덧붙이자면 여전히 구태의연한 권위주의 잔재가 남아있는 곳이 있다. 바로 구청과 주민자치센터라는 곳이다. 연로한 노인이 구청이나 주민자치센터에 들러 뭘 물으면 손녀 같은 년이 고압적인 자세로 다음과 같이 면박을 준다.
'할머니이, 그건 그렇게 하는 게 아냐. 잘못 작성했어. 다시 써와야 돼. 글씨를 좀 또박또박 써 봐. 읽을 수가 없잖아. 그리고 집에 가서 도장 다시 찍어와요.'
이건 완전히 언어 폭력이다. 민원인 1회 방문제라 하여 가급적이면 한 번에 처리하라는 상부 지시를 꿩 구워 처먹었는지 거동이 불편한 노인더러 내뱉는 소리가 경망하기 짝이 없다. 집에서 제 부모한테 응석부릴 때 쓰는 말투를 버젓이 쓴다. 민원인이 대기 중인 창구에 치솔 물고 왔다갔다하는 년이 있는가 하면 의자를 제껴놓고 13시 넘게 오침을 취하는 놈도 있다.
공무원들이 무서워하는 건 상관이 아니라 인터넷이다. 소신이고 나발이고 없다. 인터넷만 피해가면 최선이라는 식이다. 가령 구청과 통화할 때 아래를 참조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 집 앞에 한 달 넘게 장기주차된 트럭 좀 치워주세요.'
그렇게만 하면 씨도 안 먹힌다. 언제 해결될지 미지수다. 그런데 한마디만 살짝 추가하면 금세 말투가 달라진다.
'사진 찍어서 시청 홈페이지에 올릴까 생각 중인디...'
대뜸 전화를 건 민원인의 연락처, 장기 주차된 장소, 차량 상태 등을 면밀히 묻는다. 물론 차량 번호 묻는 건 필수다.
얘기가 빗나갔지만 일할 땐 직무에 충실하고 쉴 땐 깨끗이 쉬는 게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쉬면서까지 업무를 유념하면 머리 복잡하다. 보고서를 다른 직원보다 두 배 가량 작성하는 어느 직원이 귀에서 윙윙 소리가 들려 병원에 가니 과민성 신경쇠약이란 진단을 내리더란다. 뭘 그렇게 똑같은 업무를 놓고 남보다 두 배 분량의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골 싸 매는가? 두 배 더 고민을 했다는 증거다. 보고서는 초점만 맞으면 된다. 제일 잘 쓴 보고서는 짧은 분량으로 간단히 요약되어 핵심이 분명한 것이다.
일할 땐 반듯한 자세로 오직 일에만 전념하고 쉴 땐 자유로운 사고와 몸가짐으로 불편없이 지내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진정한 휴식이 가능하지 않을까? 직업이 얼마나 무서운지 얼마 전 무슨 글을 쓰다가 '포복절도'라 해놓고 틀렸다는 판단에 재빨리 '포복졸도'로 고쳤다. 맞는 말임에도 '절도'라는 말을 형법 용어로만 착각했던 탓이다.
표시내지 않는 사람으로 부지런히 일하고 푹 쉬고 싶다. 쉴 땐 대한민국에서 제일 편안한 나만의 사고와 폼으로 말이다. 그리하여 이번 휴가도 멋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