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보니 거실에 막내아들이 자고 있다. 아들 방 침대엔 아들의 친구가 자고 있다. 일찍부터 자식이나 진배없는 놈이다. 막내아들 어려서 겨울방학 내리 3년 시골로 한학 수학(受學)을 보낼 때 매년 동행했던 사이라 아주 각별하다. 그렇다는 얘기이고, 잠자는 아들을 보는 순간 웃음이 터져나왔다. 애견 꿈돌이(토이푸들) 녀석이 아들 베개를 떡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베개를 점령당한 아들의 처지가 위태롭다. 처음엔 저런 걸 용납할 수 없었는데 함께 살다보니 익숙한 광경이 됐다. 들고 있던 휴대폰으로 재빨리 찍었다.
곧 내 방으로 가서 컴퓨터를 켜고 이러저리 서핑을 하다가 밖으로 나오니 이번엔 좀 다른 자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 방에 있는 디카를 꺼내 얼른 찍었다. 녀석은 태연하게도 별다른 반응이 없다. 평소 저를 귀여워해주는 막내아들에 대한 믿음이 대단히 강한 것 같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난 꿈돌이를 그냥 내버려뒀다. 녀석은 자신의 행동이 무례하다기보다 평소 아껴주고 귀여워해주는 주인에 대한 애뜻한 애정의 표현으로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꿈돌이는 유기견 출신이다. 낯선 아주머니에게 발견되어 밤늦은 아파트 입구에서 구청 당직자를 기다리던 중 나를 만나 우리집으로 왔다. 어느새 일년이 훌쩍 지났다. 아주머니 말로는 근처 시장을 다녀오던 중 뒤따라오는 녀석을 처음 봤단다. 곧 사라지려니했던 녀석이 아파트 엘리베이터까지 함께 타자 아주머니는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고... 자신의 집에도 애견이 있다는 사실에 아파트 현관문을 냉정히 닫고 말았단다. 그런데 밤늦게 귀가한 딸이 현관문 앞에 웬 개가 있다 하여 보니 바로 그 녀석이더란다. 아주머니는 미안한 마음에 일단 안으로 들여 사료와 물을 주고 구청에 신고했단다. 그래 야간 당직자와 약속한 지점에 서있다가 나를 만난 것이다.
당시 난 야간 근무로, 근처에 일이 있어 아파트 앞을 지나던 참이었다. 아주머니 품에 안긴 녀석을 보며 혼잣말로 '개가 참 예쁘고 귀엽다'라면서 '나중에 새끼 하나 분양 받을 수 있을까요?' 했던 말이 녀석과 인연을 맺게 된 동기가 됐다. 아주머니가 개에 관한 사연을 들려주며 구청 당직자를 기다리는 중이라기에 구청에 전화를 걸어 나오지 않아도 된다 해놓고 얼른 건네받았다.
녀석은 수컷이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품위로 말하기론 수컷이 월등하지 않은가. 가족회의를 열어 이름을 '꿈돌이'라 지어주고 지금까지 가족의 일원으로 함께 살고 있다. 사실 녀석을 데려온 며칠 동안은 불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혹시 주인이 잃어버리고 애를 태우는 건 아닐까? 나중에 주인이 알면 내가 곤경에 빠지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 일었다. 아주머니 연락처도 채 알아놓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 며칠동안 일부러 현장쪽으로 차를 운전하고 다니며 전봇대나 벽에 개를 찾는 벽보가 붙지 않았나 살폈다. 그 지역은 내 근무지 관할이라 주야간 몇 번씩 오가는 코스였다.
꿈돌이를 키워보니 '푸들의 지능이 높고 대단히 영리하다'라는 말이 금세 이해됐다. 첫째 오줌 똥을 가렸고,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들었다. 코 앞에 닭가슴살을 놓고 먹지 말라 이르면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다. 터질듯한 열망과 간절한 눈빛으로... 그러다가 '먹어' 명령을 내리면 눈 깜짝할 새 입을 가져간다. 꿈돌이는 하나의 애견이라는 개념을 떠나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확실한 입지를 굳히게 됐다. 쇼파에 앉으면 저도 깡총 뛰어올라 허벅지에 척 걸쳐앉는다. 그러면서 뭔가 말을 하려는 듯 자꾸만 눈을 맞춘다. 따스한 온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진작에 찍어둔 꿈돌이 사진이 더 있는지 컴퓨터 폴더를 뒤졌다. 그 결과 몇 컷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었다. 아래 사진은 아들의 방 침대에서 잠자거나 아들과 함께 있다가 찍혔다. 비록 작은 동물이지만 꿈돌이가 우리집에 기여하는 역할은 아주 크다. 결정적인 건 가족 모두 꿈돌이에 대한 호의적인 입장이 같다는 점이다. 꿈돌이에 관한 얘기라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자연히 집안에 얘기꽃이 번진다.
아래는 이발할 시기를 놓쳐 얼굴이 덥수룩할 때 찍힌 사진이다. 영리한 눈빛만은 변함이 없다. 제가 마치 대단한 위치에 있는 냥 착각하는 표정이다. 우리집 다섯식구 중 제 서열이 3위쯤 간다고 믿는 모양이다. 사람에 따라 순순히 복종하고 가벼운 제지에도 앙탈을 부린다. 그래도 좋다!
딸의 폴더에 있는 사진이다. 녀석의 안긴 모습에서 행복한 표정을 읽을 수 있다.
꿈돌이가 우리 가족으로 오래도록 함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프지 말고, 지금처럼 항상 건강하고 생기발랄하면 좋겠다. 현관문을 열어 가장 먼저 반기는 녀석이 나는 좋다. 우리집에서 내가 '예쁘다' '사랑한다' 소리를 가장 많이 건네는 대상이기도 하다. 정말이지 볼수록 예쁘고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