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생각의 눈높이

펜과잉크 2010. 12. 17. 13:35

 

 

 

과거 시골에서 열 대여섯 중학생이 되면 장정 몫을 거뜬히 해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퇴비장에서 쇠삽으로 외양간에서 끌어다 쌓은 퇴비를 찍어 밭으로 져 나르는 일을 했고, 고학년이 돼선 경운기 짐짝 가득 거름을 싣고 돈대위 밭고랑까지 운전하고 다녔다. 돈대위 길은 비포장 오르막이라 종종 경운기가 헛바퀴질을 했지만 지그재그식으로 요령껏 운전하여 밭고랑까지 실어낼 수 있었다. 밭고랑 군데군데 부려놓고 나중에 또 쇠삽으로 찍어 공중으로 뿌리는 작업을 해야 거름발이 고루 미쳤다. 아무튼 그 시절, 밭두둑이나 논배미에서 일을 하다가 차가 한 대 들어오면 괜히 마음이 흥분되는 것이었다. 그래 윗말 용난골 벌목장을 오르내리는 삼륜차 대가리만 보여도 심중에 파장이 일었다.

'아아~, 어른이 되어 객지로 나가면 승용차 한 대 사서 저 길을 뿌지지직 문지르고 오리라!'

다짐하곤 했다.

 

드디어 어른이 되었고, 옛날의 원대했던 자가용에 대한 꿈은 한낱 우스웠던 추억이 되고 말았다. 그러면서 이 나이에 이르도록 꿈이 몇 번 바뀌고 이상이 현실로 되는 경험들을 해오면서 꿈도 더욱 구체적으로 바뀌었다.

'차를 바꿀 수 있다면...'

그 꿈을 이루었다.  

'악기를 바꿀 수 있다면...'

악기를 업그레이드한 것만 헤아릴 수 없다. 

'트럼펫을 배우자!'

트럼펫을 배웠다.

'클래식 기타를 치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도 쳐봤다.

'책을 낼 수 있다면...'

그것도 해봤다.

'만년필을 모으자!'

그것도 해봤다.

'아, 사진을 찍자!'

이번에는 카메라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맨처음 시중에 유통된 디지털 카메라는 대략 200만 화소수였다. 디지털 카메라 자체가 호기심의 상징이었으므로 너도나도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했다. 200만 화소수는 금세 400만 화소수로 바뀌었다. 600만, 800만을 지나는가 싶더니 1,000만 화소수를 넘었다. 요즘은 1,000만 화소수 가지고 어디에 명함도 못 내민다.

 

새로운 카메라가 출시될 때마다 욕심이 생겼다. 카메라가 좋으면 사진이 잘 나올 거란 막연한 기대감이 욕심을 키웠다. 그래 3-4년 전에 소니 알파-350 모델을 구입했다. 그때 신품가로 고가였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막상 사진을 찍어보니 그 전에 가지고 있던 소니 F-717 모델보다도 화질이 떨어지는 것이다. DSLR은 촬영기법 자체가 다른가 싶어 책자를 읽고 해당 까페에 가입하여 정보도 읽었다. 하지만 적절한 프로그램을 활용하지 않는 한 해상도는 변하지 않았다. 그제서야 세상 한 켠에 눈이 뜨이기 시작했다.

 

그렇다! 카메라 화소수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문제인 것이다. 사람의 시력 1.5의 망막으로 세상을 볼 때의 선명도를 카메라로 계산하면 대략 1억2천만 화소수라 한다. 일부에선 1억 화소가 넘는 카메라가 개발됐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곧 2억만 혹은 3억만 화소수 카메라도 개발되리라. 하지만 설령 3억만 화소수 카메라가 개발된다고 인간의 시력 1억2천만 화소수로 뭘 기대할 것인가? 화소수가 문제라면 내 집의 컴퓨터 화면도 역시 비슷한 단계로 끌어올려야 높은 선명도를 기대할 수 있다.

 

득도라는 것이 지명법사가 창건한 칠갑산 정혜사에서 마빡에 물 묻혀가며 새벽 염불을 통해서도 가능하겠지만 세속의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서도 이룰 수 있다. 생각의 눈높이를 조절하는 것이다. 프로 연주자 아니니 악기도 그만하면 됐고, 전업작가 아니니 만년필도 저 정도면 됐고, 사진작가 아니니 카메라도 지금의 것으로 충분하다. 다소 모자라면 모자란대로 사는 게 삶이 아닐까? 넘치는 세상에서 아나로그 시절의 지지직표 레코드판을 수집하는 사람들처럼 조금 모자란 가운데에서 마음의 충만을 얻을 수 있다. 큰 깨달음 속에 지명의 문턱을 넘어서려는 세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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