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사골국을 소재로

펜과잉크 2010. 12. 8. 00:33

 

 

 

밤이 깊었다. 거실엔 어머니께서 누워 텔레비전을 보신다. 그만 방으로 들어가 주무시라 했다. 내일은 십정동 도살장 근처에서 사골을 사다가 푹 고아 드려야겠다. 농촌으로 시집 오셔서 평생 일만 하신 어머니... 휘영한 달밤, 울 밖 채전에 엎드려 풀 뽑으시던 어머니...

 

지난 일요일, 대둔산 친구들 모임에서 인사를 나누고 고향집으로 차를 몰았다. 어머니께서 며칠 자식들 집을 둘러보고 싶다시어 차로 모시고 올 마음에서였다. 고향집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어머니를 모시고 인천으로 향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차안에서 사골국물 담아온다는 걸 깜빡 잊으셨다는 것이다.

"정육점에서 사골 10만원어치를 사다가 고아놓은 걸 잊었구나"

어머니는 절반을 덜어 냉동실에 잘 보관해놓았노라는 말씀을 곁들이셨다. 이미 차를 고속도로에 올렸으므로 이웃집 어른이 갖다 잡수시도록 전화 하시라 했으나 현관문을 굳게 잠궈 달리 방법이 없다는 말씀이었다. 어쨌든 사골국을 무시한 채 인천 우리집으로 모셨다. 그저께의 일이다.

 

어머니는 우리집에 계시면서도 고향집 사골국물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날이 밝으면 고향집에 내려가 전부 가져오겠다신다. 왕복 경비가 더 들 거라 말씀드리고 싶었으나 어머니 의지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 말을 아꼈다. 어머니 뜻대로 하시도록 둘 참이었다.

 

오늘 아침, 어머니는 나보다 먼저 일어나셔서 옷을 입으시곤 고향집에 다녀오겠다신다. 그래 출근하여 정오가 지난 후 막내아들에게 전화했더니 예상대로 시골집이었다. 아들에게 부엌의 사골국물부터 물었다. 돌아온 답은 이미 맛이 변질되었단다. 순간 허탈감이 들었으나 어쨌든 어머니 하시고 싶은대로 하시게 했으니 그게 더 마음 편하다 인식되었다.

 

오실 때 위탁영농 맡긴 집에서 햅쌀을 두 포대나 가져오셨다. 방아 찧어서 말이다. 저 쌀은 정말 좋은 쌀이다. 오염되지 않은 절골 고랑 맑은 물을 토양으로 자란 벼에서 수확한 쌀이다. 더러 각별한 분들께 20-30kg씩 나눠 드리고 싶지만 어머니께서 무슨 생각을 하실지 몰라 엄두를 못내고 있다.

'귀한 쌀을 누구 주려고? 각별한 사람이니? 남자니? 여자니? 어떤 사이여?'

틀림없이 물으실 것이다.

 

어머니는 가끔 내게 지조있게 살라는 뜻의 말씀을 하신다. 신혼시절, 시아버지께서 아랫마을 과부랑 주고받은 연애편지를 별채 처마 서까래 틈새에서 훔쳐 읽었다는 추억담과 아버지의 여자관계 등을 예로 들어 망설임없이 말씀하신다. 내가 아는 바로도 아버지는 젊은시절 어머니와 거래관계에 있던 조양(趙孃)이란 아주머니와 사귀셨고, 우리 고향 O구 할머니와도 사귀셨다. O구 할머니랑 용한 무당한테 점을 보러간다 하시고는 두 분이 외박하시고 오신 걸로 안다. 어머니는 크게 문제삼지 않았지만 또박또박 짚으셨다.

"당신이 여자 보는 거 갖고 시시콜콜 따지고 싶지는 않지만 사귀려면 아무도 몰래 사귀란 말여. 그 집 아들이 와서 툴툴거리게 하지 말고..."

그런 식이었다.

 

아버지는 서울 을지로2가에 계시던 젊은시절에도 선글라스에 하얀 판타롱을 입은 아주머니와 사귀셨다. 두 분이 남산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얼마나 다정한지 짐작할 수 있다. 사진으로 보면 신성일 엄앵란 씨의 젊은날에 뒤지지 않는다.

 

어머니는 아버지 말씀을 하시면서 은산면 최고의 멋쟁이셨다는 호평을 아끼지 않는다. 광천까지 가셔서 한 통에 20만원이 넘는 맛좋은 새우젓을 사오셨다는 말씀과 이번 김장에 아버지의 마지막 새우젓을 몽땅 소비했다는 말씀까지 곁들이신다.

"새우들이 전부 이만씩 혀!"

당신의 새끼손가락 아랫부위를 표시해 보여주신다.

 

작년, 고향의 마을회관에 어른들이 모였을 때 인척 형님이 이런 말을 하더란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은산다방 신현숙' 사장님이 많이 외로우실 거라고... 그 때 어머니는 다음과 같이 응수하셨단다.

"사내가 불방망이 차고 그런 짓도 못해? 내 평생 그런 일 가지고 언성 높이고 사람 얼굴 쥐어뜯은 적 없네."

일순 사위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고...

 

어머니는 또 아버지 돌아가신 후의 후일담도 들려주신다.

"내 동창 하나가 저 또한 혼자 됐다고 전화로 하냥 살자더라. 그래, 이 놈 한 번만 그런 소리 했다가는 가만 안둔다 했지. 사람을 뭘로 보고... 미친놈! 너는 좀 다르게 살아라. 사내가 주색을 너무 밝히면 오래 못 가!"

 

어머니는 내게 현재 마을회관 공금이 얼마 남았고, 금년에 한 집당 쌀 두 말씩을 걷으면 얼마가 추가로 적립될 거라며 조목조목 들려주셨다. 우리집에 계시면서도 고향의 이웃들에게 전화로 이것저것 지시하듯 하신다. 곧 회관에 경로당이 열리면 경비문제가 대두될테니 착오없이 잘들 하라는 말씀이셨다.

 

사골을 사오면 어머니께 끓여달라해야겠다. 어머니는 고향집에서처럼 자식에게 덜어먹일 즐거움에 젖어 가끔씩 수저로 간을 보시며 맛있게 사골국물을 우려내실 것이다. 국물에 밥을 말아 잡숫는 어머니를 보면 지난날의 아버지와 사랑스런 아우들 모습이 떠오르리라. 어머니도 행복해하실 것이다. 그렇게라도 잃어버린 행복을 찾아드릴 수 있다면... 어머니는 사골국을 드시면서 장남에게 또다른 이야기 한토막을 재미있게 들려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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