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거룻배

펜과잉크 2011. 1. 11. 23:33

 

 

 

거룻배의 사전적 의미는 '돛이 없는 작은 배'로 적시되어 있다. 흔히 말하는 나룻배는 강나루 같은 델 오가는 배를 뜻한다. 거룻배든 나룻배든 돛없이 오가는 작은배에 사공이 여럿이라면 과연 배가 산으로 갈 만하다.

 

강원도 영월 동강이나 인제군 기린천 급류타기 코스의 조교들이 가장 다루기 힘든 사람들이 학교에 재직하는 교사들이라 한다. 이 사람들은 평생 지시형 권위주의에 길들여져 다른 사람 말을 들으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야ㅡ, 너 내일 머리 깎고 와. 머리 깎고 와서 나한테 검사 받아.'

혹은

'유리창 청소 깨끗이 해놓고 검열 받아요'

하는 식으로 평생을 아이들에게 지시만 하다보니 배에 올라타서도 서로에게 지시만 하려 든다는 것이다.

'이 선생, 이쪽으로 저어욧!'

'김 선생님이 잘못 저으시는 거에요. 저처럼 저으세요.'

그러는가 하면

옆에서 노 젓는 사람까지

'그 사람들 말 많네. 나처럼 산꼭대기쪽으로 열심히 저으면 될 게 아닌가?'

뭐 그런 식이란다.

 

얼마 전,

제주도 오리엔탈호텔이 묵으며 1층 몽블랑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게 되었다. 아들과 마주앉은 테이블 옆엔 50대 중반의 남자 둘이 마주앉아 식사중이었는데 굳이 대화를 엿듣지 않더라도 직업이 교사라는 걸 알기 충분했다. 대화 속에 '다른 학교' '발령' '장학사' '교감 승진' 어쩌고 하면 교사가 확실하다. 대개 보면 옆사람 들으라는 식으로 목소리를 키워 대화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듣는 이의 고충(?)을 좀 헤아려 줬으면 좋겠다. 우리가 아이들이냐? 목소리 키워가며 직업적인 얘기 떠들어대게...

 

두 사람은 아침 대화부터 동료 교사를 험담하고 있었다. 장학사로 발령날 줄 알았는데 의외의 학교로 갔더라면서 그런 곳으로 갈 것을 장학사로 발령날 거라며 자랑하더라고 무슨 죄인 단죄하듯 헐뜯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룸메이트로 보였는데 간밤의 일을 놓고도 서로 믿지 못하고 있었다.

"자정 무렵 속이 안좋아 바람 좀 쐬려 나갔다 왔어."

한 사람이 말을 하자 마주앉은 사람이

"난 또 어디서 문자 받고 나갔다 오는 줄 알았지요!"

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더니 이번엔 코곯이를 놓고 설전이다.

"난 잠들고 5분 가량 코를 곯고 그 다음부턴 숨소리조차 안낸다고... 식구들이 그래요."

말이 끝나자 앞에 앉는 사람이 응수한다.

"그래도 10분 이상 곯던데... 내 짐작에 10분은 넘고 15분은 안되는 것 같았어."

 

이렇게 서로 말이 틀리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조직이나 단체에서 흔히 강조되는 일사불란이니 일심동체와는 거리가 먼 얘기다. 예를 들어 시인 열 명이 거룻배에 앉아 한 문장씩 지어낸다면 그 역시 각기 다른 작품이 될 것이다. 하지만 선두가 하류를 향해 가고 있음을 모르는 이는 없으리라. 이런 상황에서 혼자 일어나 '류 선생, 시를 백석이나 최두석처럼 쓰지 말고 장석남이처럼 써요' 한들 과연 그대로 써질 것인가? 수준이 다른 마당에 말이다. 그냥 서로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면서 공생을 위해 호흡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혼자 잘났다고 떠들면 배는 산으로 갈 것이요 함께 협조하면 배는 순풍에 힘을 받고 대양으로 쑥쑥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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