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첩장에 주소를 붙인다. 컴퓨터로 프린트한 활자를 칼로 오려 붙이는 작업이다. 막상 해보니 보통 일이 아니다. 심적으로 부담이 따른다. 곤란하다 생각하니 청첩장 보낼 대상이 하나도 없다. 그래 사람 심보에 철판을 깔게 되는데 이것이 적성에 맞지 않으니 급기야 입술이 부르트고 말았다. 대체 사람으로서 떳떳이 할 게 못된다. 청첩장 읽고 찾아다닐 땐 몰랐는데 -빼먹은 곳도 있지만- 막상 당사자 입장이 되고보니 여간 곤혹스럽지가 않다. 도대체 이걸 해서 무얼 바라자는 것인가? 아들에게 지시하여 뽑아낸 명단에 가난한 고향 친구 이름이 있는 걸 보고 -동창회 명부를 옮긴 듯 하다- 깜짝 놀라 전화를 걸었다.
"깜빡 잊고 네게 딸 혼례 청첩장을 보냈구나. 절대 부담 갖지 마라. 그리고 오지 마라. 진심으로 부탁하는 거다. 조만간 고향에서 만나 우리 둘이 김치찌개 놓고 공기밥 먹으며 소주나 한 잔씩 하자구나!"
청첩장... 선량한 이웃에게 죄를 짓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