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품상회(美品商會)! 미제 물품을 파는 곳이다. 특징이 있다면 미군 보급품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장님은 저 집에서 20년 넘게 장사를 했단다. 댁은 매장으로부터 300m 가량 떨어진 대우푸르지오아파트이다. 큰따님은 미군부대 군무원으로 재직 중 미군과 결혼하여 미국으로 건너갔고, 둘째따님은 옹진군청 직원이며 셋째따님은 이제 고등학생이다. 저 분과 대화하다보면 세상사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법을 어기면서까지 이익을 챙기는 사람은 아니다. 나도 처음엔 인상과 말투에 기분 나빠 경계를 했는데 점점 다가가니 선입견하곤 다른 점이 많았다. 장사하는 수완은 좀 특이하다. 모르는 뜨내기 손님에겐 바가지도 씌우는 것 같다. 그 분이 싫어하는 스타일은 전화로 시시콜콜 따지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전화 상담을 하리만치 한가한 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항상 뭔가를 하고 있다. 가만히 있는 법이 없다.
글을 올리면서 분명히 말하고 싶은 점은 필자가 저곳을 홍보할 목적으로 귀한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음을 밝힌다. 따라서 저 분과 통화하였거나 직거래 중 무뚝뚝한 말투로 인해 좋지않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분의 확대해석을 금한다. 내가 좋아 스스로 찾아갈 뿐이고, 오늘처럼 미군부대에서 얻은 오리지날 커피 한 통 주면 고맙다 인사하고 받아오는 정도다. 그 커피가 어느 정도 양질인지 모르지만 시내 대형 매장에서도 흔히 보는 디자인이다. 군납은 좀 다른가? 커피 향을 음미하면서 마실 정도의 마니아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
<미품상회> 전경. 20년 넘게 매장을 옮기지 않았단다. 어셔가의 몰락을 연상시키지만 외형에서 느껴지는만큼 지저분하지 않다.
마침 사장님은 신촌에서 온 젊은 손님과 흥정을 하고 있었다. 신촌에서 전철을 타고 왔는데 갈 땐 물건이 있으므로 택시를 대절한단다. 강남에서 일종 유흥업소를 운영한단다. 아래 사진의 매직 글씨는 사장님 필체가 아니다. 사장님체는 따로 있다.
미제 석유난로가 있어 찍었다. 상태가 아주 양호했다. 가격을 묻지 않았지만 내가 묻는 가격과 낯선 손님이 묻는 가격이 천양지차일 거란 예감이 들었다. 석유통까지 세트로 구입하면 썩 어울릴 것 같았지만 내게 두 대나 있는 난로이므로 사진을 찍는 정도로 그쳤다.
난로 내부
난로 내부2
유류통 표패
사장님이 커피를 타 줘서 탄통에 올려놓고 찍었다. 탄통은 나 같은 손님이 방문했을 때 접대용 의자로도 활용된다. 물휴지로 대충 쓱쓱 문지르고 앉으라신다. 탄통 뚜껑에 물이 그대로 묻어 있다. 앉아도 엉덩이가 축축할 정도는 아니었다. 프림을 타지 않은 커피는 오래도록 그 향이 혀 끝에 남았다.
계제에 사장님께 화목난로에 대해 물었다. 왜냐하면 화목을 재료로 하는 난로 주변이 의외로 깔끔한 점에 궁금증이 도진 때문이었다. 사장님 말씀에 의하면 구청 공원관리과 내지 시설관리과 직원에게 부탁하여, 가령 태풍에 쓰러진 국유림 혹은 시유림의 일부를 땔감으로 얻어 전기톱으로 잘라 쓴다는 대답이었다. 또한 재를 걷어내는 방법은 난로 아래 환기구를 열어 물을 부은 후 갈고리 같은 도구로 적당히 배합하여 모종삽 같은 걸로 걷어내면 먼지 한 톨 날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부대에 담아 모은 뒤 날 잡아 도로변에 내놓으면 쥐도새도 모르게 집어가는 사람이 있다고... 하긴 뜨락이나 화단에 상추 상추를 고추를 심어 가꾸는 분들에겐 요긴한 거름이 되리라. 아래 난로 역시 미군용품이다. 뚜껑에 U.S라는 표기와 함께 1945라는 각인이 보인다. 아마도 6.25 전쟁 중에 유입되어 채 국내에 남아있던 잔량 중 하나로 추정된다. 미제 난로를 모방한 국산품이 있긴 하나 재질이 달라 화력이나 수명에서 큰 차이가 있다. 미제 난로는 주물이 두꺼워 열을 받으면 주변에 있기가 난감할 정도다. 난로의 상부를 들고 막대기로 치면 '둥~'하고 징소리를 내는 특징이 있다. 국산품은 양철 찌그러진 소리 정도... 내가 소장하고 있는 난로 역시 사진의 재고품 중 하나 아닐까 싶다.
사장님의 글씨는 잘 읽어야 한다. '베레모'를 '베루모'라 적어 놓았다.
선반엔 바퀴벌레약도 있다. 사장님의 필체로는 '박끼벌러약'이 되겠다.
귀한 오일을 발견하여 한 컷 찍었다. 바베큐 요리 같은 거 할 때 숯불에 뿌리는 오일이다. 저 오일을 뿌리면 고기에서 냄새 같은 게 나지 않는단다. 화력을 돋구는 데에도 필요한 오일이다.
캠핑족이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볼 물품이다. 오른쪽은 수통이고, 가운데는 텐트 말뚝(Tent Peg)이다. 알루미늄 합금으로 되어있어 단단하다. 텐트 말뚝이라는 특성으로 영구적이진 않다. 다만 수명이 길다는 걸 장점으로 꼽을 수 있겠다. 왼편의 M-65 필드자켓용 자크가 보인다. 마니아들에겐 귀한 물건일수도 있다. 시중에선 보기 힘든 알루미늄 합금 실버 자크다.
차량을 세차할 때 쓰는 타올이다. 극세사와는 다르다.
사장님은 손님과 열심히 흥정중이다.
손엔 알사탕이 들려져 있다. 저것도 미군부대용이란다. 연신 맛있다면서 핥았다.
앗, 돈을 챙겨 주머니에 입수하는 순간을 놓쳤다. 어찌나 빠른지, 셔텨를 누르기 전에 손이 호주머니 속으로 사라졌다.
알사탕을 하나 주길래 사진으로 찍었다. 사진보다 사실적인 기록은 없다.
사장님께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 드리고 포즈를 취했다. 아래는 첫번째 사진이다. 요령을 알려주고 앉았더니 멋진 자세로 셔터를 누르는 순간 손이 '흔들'하는 것이었다. 그래 다시 찍으라 했다.
다시 찍은 사진이다. 카메라 렌즈가 상향을 지향하는 각도다. 한 번 더 찍으라 했다.
위 두 컷보다는 고무적이다. 하지만 느낌이 안좋아 다시 눌러 달라 했다.
이제야 전신이 잡혔다. 몇 번 부탁하면서 내 인상이 달라졌다. 속으로 카메라 셔터 하나 못 누르나 생각하니 순간 불만스러웠다.
이번엔 따로 포즈를 안 잡았는데 '쿡' 찍어줬다. 셔터 누르는 법을 알고는 흥미로운가 보다. 자발적으로 몇 컷을 눌러준다.
사장님한테 받은 초이스 커피다.
벽걸이에서 발견한 '운현궁표 조선된장' 포장 가방
끝으로 본인이 소장하고 있는 미군용 야전침대를 소개하고자 한다. 아래 철제 침대는 야전용이긴 하되 알루미늄 프레임으로 되어있는 휴대용과는 다르다. 휴대용은 상당히 많이 보급되어 있지만 철제 침대는 오늘날 거의 보기 힘들어졌다. 추측하건대 철제 침대는 장성급 같은 고위 지휘관 막사나 숙소 전용으로 보인다. 저 침대에 맞는 매트리스를 구하고자 ebay 사이트를 들락거린 기억이 난다. 야전용이지만 용수철 탄성이 매우 강해 매트리스를 깔고 누으면 기대 이상으로 편안하다.
훗날 고향으로 돌아가면 별채와는 또다른 용도의 컨테이너(가로 3미터 x 세로 6미터)를 설치하려 하는데 다름 아닌 다용도실이다. 가령 악기 연습도 하고 난로에 커피나 라면을 끓여마시는 공간으로 활용한다 가정하면 컨테이너 한쪽에 설치하여 피곤할 때 잠깐 쉴 수 있는 침대로 최적일 듯 싶다.
설치 전의 야전침대
설치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