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깊은 밤 깊은 곳에

펜과잉크 2011. 2. 23. 00:57

 

 

 

 

 

 

 

삼경이다. 고향집 어머니는 주무시겠지? 눈 감으면 고향에서의 꿈같은 시절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봄이 다가온 절기엔 웃방 둥가리 고구마도 떨어져 새벽을 맞느라 배가 고팠다. 그럼 저녁밥솥에서 긁어놓은 누룽지를 씹어 넘기며 허기를 달랠 수 있었다.

 

고향집엔 30년 전의 초벌 원고가 있고 마개를 꼬옥 닫아놓은 잉크병도 있다. 브리테니커 백과사전도... 고향집 갈 때마다 그것들을 바라보며 꿈많던 옛시절을 회상하곤 한다. 내가 이 직장에 들어올 줄 상상이나 했던가.

 

딸을 시집 보내고나서 느낀 점이 있다. 이 나이까지 실패한 삶을 살지 않았다는 것과 앞으로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사명감이다. 나의 일을 먼저 알고 찾아온 이들도 여럿이다. 축의금 봉투는 지금도 꾸준히 들어온다. 한 달이 넘도록 들어온단다. 진작에 들은 이야기인데 당사자가 되어보니 모든 게 신기하다.

 

훗날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청양 칠갑산간마을 작은 예배당에 다니며 그곳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다. 어머니가 즐겨 읽으시던 성경을 품에 안고 십자가 아래서 기도 드릴 것이다. 작은 예배당을 찾는 십 수 명 혹은 스물 대여섯의 이웃들 앞에서 색소폰과 트럼펫을 불고 싶다. 그때까지 열심히 연습해야지. 더러 대전광역시나 공주시 대형 예배당 목사님이 검정 자가용을 굴리고 찾아와 '우리 교회 오셔서 색소폰 좀 연주해주시죠. 특별 대우해드리겄습니다' 해도 끄떡없이 산골 작은 예배당에만 다니련다.

 

어느 봄날, 지난 생의 뜨거웠던 사랑이 생각나면 노틀담 산길을 그리며 웃음지을지도 모르겠다. '못견디게 그리워서 보고 싶어서 찾아왔네, 추억의 푸른 언덕을...' 노래 부르리. 잔디 돋아나는 양지볕에서 야마하 올드 C-300 기타를 뜯을 것이다.

 

 

 

 

'雜記 > 이 생각 저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상 크로키  (0) 2011.03.10
아침단상  (0) 2011.03.09
척 맨지오니의 음악과 함께  (0) 2011.02.19
꿈돌이  (0) 2011.02.15
일상의 즐거움  (0) 2011.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