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부산에서 일년을 살았다. 대연2동 못골시장과 UN 묘지 사이 주택가 단독집이었다. 주인 어른이 언양인가에서 군납업체를 운영하였고 아주머니는 마산 결핵원에 계셨다. 커다란 집엔 나와 내 또래의 주인집 딸과 식모 셋뿐이었다. 원래 그 집은 하숙하곤 거리가 멀었으나 주인어른의 각별한 편의로 묵을 수 있었다. 그 분 입장에선 충분히 그럴 수 있었지만 더 이상의 언급은 피하기로 한다.
부산에 머물면서 일년 동안 안 가본 데가 없다. 광안리 해운대 송정 바닷가는 지정 코스였다. 구덕체육관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복싱경기를 보고 온 날도 있다. 태종대 산길과 용두산 공원과 자성대, 부산진역, 서면, 연산로터리, 온천장, 동래산성 등산로... 두루 다녔다.
부산엔 글을 아주 잘 쓰는 조O환 선배가 계시다.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됐던 손병걸 군대 후배가 머물렀던 도시이다. 그는 부인과 해운대구에 살다가 몇 년 전 홀로 인천으로 올라왔다. 아내와 딸을 두고 온 입장이 어떨까? 손 후배는 군시절의 훈련 후유증으로 전맹 장애자가 되었다.
지난 주 금요일, 부산에 내려갔다. 그동안 부산을 여러번 다녀왔다. 이번에도 도시는 포근한 대기로 나를 반겨주었다.
부산역 광장에서 역사를 뒤돌아보며 찍었다. 그 옛날, 부산행 열차에서 내려 대합실 개찰구를 빠져나오면 맨 처음 저 계단에 서서 역전을 내려다 보곤 했다. 대연2동으로 가는 버스는 광장을 조금 걸어가야 한다.
역전의 아리랑호텔은 30년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여전하다. 옛날엔 1층에 커피숍이 있었다. 만남과 이별의 모든 순간들이 집약된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편의점이 입점되어 있다.
남포동2가의 <서울깍두기>집에서 양지탕을 시켜먹었다. 무척 배가 고픈 상황이었다. 꿀맛 같았다.
남포동 거리
늦은밤,
태종대 자갈마당에서 소주를 마시다가 찍었다. 집 나온 고양이에게 가리비 살점을 몇 번 던져주니 경계를 풀고 다가온다.
송도 숙소에서 찍은 야경이다. 저 길로 곧장 가면 암남공원 입구에 닿는다.
아침 6시50분에 잠이 깨었다. 창밖으로 미명이 새어들어왔다. 커튼을 열자 저 아래 노상 주차장에서 젊은 남녀가 서로 다투고 있다. 차를 몰고 떠나려는 남자를 여자가 말리는 중이다. 다툴 것 까지야...
태종대를 배경으로 한 일출 장면이다. 언제 다시 저 순간을 포착할 수 있을까?
아침 식사를 호텔 근처 식당에서 했다. 대구탕 맛이 일품이었다. 반찬도 저 정도면 푸짐한 편이다.
점심 식사로 전복죽을 시켰다. 맛이 참 좋았지만 아침 식사를 늦게 했던 탓에 다 비우지 못했다.
휴식을 취하다가 찍었다.
귀신인가 했음!
암남공원 입구에서 찍었다. 30년이 흐른 지금 부산은 모든 게 달라졌다.
공원 입구 <구름속의 산책>에서 일행과 만년필을 소재로...
암남공원을 나와 곧장 용두산공원으로 이동했다. 타워 전망대에서 찍은 사진이다. 멀리 서구 암남동과 영도구 영선동을 이어주는 남항대교가 보인다. 영도다리도...
잘 보면 바다 가운데로 거대한 주탑 두 개가 보인다. 영도구에서 광안리 방향으로 거대한 해상대교를 건설 중인 것 같았다. 저 다리가 완공되면 부산의 교통 흐름이 상당히 원활해질 거란 기대가 섰다.
부산엔 일본인 관광객이 많이 보였다. 타워 전망대에도 순전히 일본인들이었다.
세계악기 전시관을 빼놓을 수 없었다. 여러 컷 중 일부를 올린다.
내 악기이다. 소장한 악기 중에서 가장 아끼는 KING 1500 실버 Bb 모델이다. 훗날 고향으로 돌아가면 지난 날의 인연들을 그리며 뒷산 말랭이에서 오래도록 트럼펫을 불 것이다.
마인드가 비슷한 분인 것 같아서 찍었다. 상의 오른쪽 어깨에 THE NORTHFACE 영문이 찍힌 점이 특이하다. 저런 옷도 만드나 보다.
옛날의 용두산공원은 배 고팠던 기억밖에 없다. 그땐 중부경찰서쪽이나 남포동에서부터 걸어서 올랐다. 공원에 도착해도 타워에 오를만한 돈이 없었다. 나는 누군가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신세였다. 그 시절의 인연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어디선가 잘 살고 있으리라! 세상 천지 흔하디 흔한 이름이라 찾을 수도 없다. 찾는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부산역 골목의 <김치찜> 식당에서... 저 맛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20시 40분경,
대전역에 도착하여 동광장에서 기다리는 아들을 만났다. 곧장 고향집으로... 고향집에서 아들이 손을 이끌어 가보니 아우 차 운전석에 아버지 사진이 있다. 가슴이 뭉클했다. 다시 뵐 수 아버지... 지금도 여전히 고향집에 계실 것 같은 내 아버지...
고향집에서 만난 둘째아우의 손을 찍었다. 오랜세월 암벽과 빙벽등반을 해온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혀 기형으로 변해있었다. 아우는 자신이 살고있는 집의 계단에 붉은벽돌을 지그재그로 세워놓고 그걸 밟고 오르내리며 몸의 균형을 잡는 연습을 한다고... 내가 직접 목격한 바이기도 하다. 한때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아우가 열심히 사는 것 같아 흐뭇하다. 모든 아우가 다 애뜻하지만 시련을 여러번 겪은 아우라서인지 유난히 정이 간다.
일상으로 복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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