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긍정의 강한 힘

펜과잉크 2011. 7. 17. 13:27

 

 

 

 

살면서 몸 아프다는 말을 처음 하는 것 같다. 건강이 안좋다. 최근 증세가 부쩍 심하다. 가끔 종아리 부위가 마비되곤 했는데 근래 와서 발뒤꿈치 부위까지 내려갔다. 허벅지 밑으로 찌릿한 통증이 오기도 한다. 그리하여 그저께 관련 의학과에 들러 정밀 촬영을 했다. 결과는 L5 척추와 S1(꼬리뼈) 사이에 협착증이 있다는 진단이었다.

- 엉덩이 주사 + 물리치료 + 1개월 분량 치료제 -

 

고질적인 병세는 군시절로 올라간다. 특공대 훈련중 허리를 삐끗한 걸 무심히 넘어갔다가 전역 후 연중 2-3회 오른쪽 광대뼈가 욱씬거리는 증세가 지속적으로 있었다. 2-3일 지속되다가 사라져 별 거 아니려니 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심하더니 약 1개월 전부터 연일 통증이 이어진다. 그래 그저께 병원에 들른 것이다.

 

  1. 똑바른 자세

  2. 긍정의 마인드

  3. 진실의 힘

  4. 운명을 받아들이기

 

의사는 물리치료에 전념하면 치료할 수 있단다. 하지만 물리치료에 목매듯 하지 않겠다. 인명은 재천이다. 긍정의 마인드로 하늘의 뜻에 따르고 싶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순응하고 싶다. 아무도 운명을 비켜가지 못한다. 만년 건강할 줄 믿었던 내가 병약한 몸으로 고된 현실을 버티고 있다.

 

   

 

 

 

 

 

 

 

 

 

 

 

 

 

정재훈이란 후배 직원은 사십대 초반임에도 허리 받침대를 끼고 다닌다. 차량에 승차할 때 의자 코너에 설치하고 기대어 앉는다. 군 시절, 고참한테 M16 소총 개머리판으로 찍힌 부위가 지금까지도 안좋다는 것이다.

 

남자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 군대 다녀오는 게 큰 자부심이지만 아무 탈없이 군생활을 마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근래 들어 계속되는 허리 통증도 군시절에 얻은 병이다. 통증이 2-3일 반복되다가 사라져 별것 아니리라 하다가 오십이 넘고 빈도가 잦더니 요즘은 연일 욱씬거린다. 전기에 감전되었을 때처럼 찌릿한 느낌이 허리와 오른쪽 허벅지를 훑기도 한다.

 

내 허리 고장은 대략 아래와 같은 원인으로 추정된다. 결정적인 건 1984년 육군전투력에 대비하여 연일 반복되던 특공무술 단련 때 연병장에서 교차낙법을 하다가 잘못 떨어진 데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그때 허리가 삐끗하는 통증을 느꼈으니 말이다. 

 

몇 편 그림으로 설명하겠다. 아래 첫번째 사진은 1982년 구암리 막사에서 부사관 김낭근 씨로부터 군화발로 차이던 순간을 기억삼아 그렸다. 야간점호를 마친 전우들이 침상 끝선을 발판삼아 맞은편 침상 모서리에 머리를 박고 원산폭격하는 장면이다. 팔을 전부 열중쉬어 자세로 취했다. 저렇게 20분쯤 있다가 일어서면 정수리 부위에 커다란 혹이 생긴다. 체중의 하중이 정수리로 집중된 때문이다.

 

그날도 저렇게 원산폭격을 하고 있는데 옆에 서있던 김낭근 부사관이 느닷없이 군화발로 내 옆구리를 내질러 찼다. 예기치 않은 군화발에 나는 배를 움켜쥐고 쓰러졌고, -동시에 바닥으로 추락- 옆의 전우들이 줄줄이 균형을 잃고 나동그라졌다. 복부 통증은 한동안 계속되어 숨도 못쉬고 기절하다시피 있었다. 저건 얼차려가 아니라 가혹행위다.

 

 

 

 

 

 

 

 

 

 

아래 두번째 사진은 푸세식 화장실 뒤편 수풀 앞에서 홀랑 벗고 모기파티를 하는 그림이다. 앞에 몽둥이 들고 서 있는 사람이 공주 출신 박흥신 선배다. 두 시간 가량 화장실 뒤편 수풀에 꼼짝없이 서있다가 들어오니 온몸이 두드러기였다. 모기에게 뜯긴 자국이었다. 박흥신 선배는 충청도 공주의 온화한 성품임에도 피해의식이 강했다. 성격 자체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지금도 공주에 사시는지 궁금하다. 지역별 전우회엔 참석하지 못하리라 믿는다. 군대시절 원한이 맺힌 후배한테 한 방 얻어맞을까봐서... 피해의식이 강했던 분이다.  

 

 

 

 

 

 

 

 

아래 세번째 사진은 1983년 가을, 특공대로 차출되어 연대 연병장에서 전투축구를 하다가 서봉조 선배에게 허리를 차이는 장면이다. 나는 축구를 잘하지 못했지만 수비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내 앞으로 공이 날아오면 함부로 빼앗으려 하지 않았다. 내가 드리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적극 달려드는 사람이 없었다. 나를 차두리 선수쯤으로 연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웬만큼의 반칙이 허용되는 군대 축구에서 걷어차고 메다꽂는 정도는 휘슬 대상이 아니었다. 나는 그 방면에 탁월했다. 잡초처럼 자란 시골 출신 아닌가? 그래 한 번은 축구를 아주 잘하는 서봉조 선배가 볼을 드리볼하고 들어오길래 몸을 '부웅' 날려 그의 몸에 '쿵' 충돌했다. 서봉조 선배는 비명과 함께 나동그라졌고, 이때부터 그는 내게 복수의 기회를 노렸던 것 같다. 다음 전투축구 때 볼을 바라보고 등진 내 뒤쪽에서 이단옆차기로 허리를 내질러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허리가 앞으로 꺾이는 충격 말이다. 곧 정신을 차렸지만 아직도 기억에 있다. 서봉조 선배는 노래를 썩 잘했다. 나보다 두 달 빠른 선배다. 잘 사시는지... 

 

 

 

 

 

 

 

 

 

마지막 아래 사진은 특공무술 단련 당시 교차낙법이 실패하면서 발생한 충격 장면이다. 1984년 육본전투력측정에 대비하여 5-6개월 전부터 무수한 훈련을 받았다. 30kg 군장을 메고 용대리 백담사 입구 삼거리에서 미시령 넘어 속초 대명콘도 입구 반환점을 돌아오는 급속행군이 이어졌다. 24km를 3시간30분에 주파하는 훈련이었다. 인제 근처 야간사격장에 텐트 치고 4주간 야간사격만 한 적도 있다. 이때도 양계장 하수구 똥물에 들어가 1시간 가량 기합을 받았다. 당시 똥물 입수를 명령한 사람은 임효제 부사관이었다. 뭐 그도 상부의 명령에 어쩔 수 없었으리라 믿는다. 이해한다. 군대생활하면서 기합을 한 두번 받았나? 나중엔 곡괭이자루를 보면서 묘한 스릴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어서 때려라! 오늘 맞으면 며칠 또 조용하겠지.'

 

용대리 연병장에선 특공무술 단련이 이어졌다. 식당에 갈 때도 군가에 맞춰 단련봉을 두드리며 이동했다. 야간점호에 임박해서도 한 시간 동안 단련봉을 두드렸다. 단련봉은 붉은벽돌 크기의 사각틀에 새끼줄을 감은 것으로 손날로 끊임없이 두드려 파괴력을 증강시키는 훈련이었다. 나중엔 손날에 굳은살이 박혔다. 낮엔 주로 연병장에서 특공무술 특무형 위주로 숙달훈련을 받았다. 맨손대 대검, 대검대 대검, 대검대 소총, 대검대 몽둥이, 대검대 맨손 등 공격술이 무수히 많았다. 대검으로 적의 목을 딸 땐 한 방에 쑤셔 옆으로 당기고, 찌를 적에도 단번에 찔러 치명상을 가하되 45도 비틀어 뽑아 단순에 절명시키는 훈련이 반복됐다. 특공무술에 있어 낙법은 기본이었다. 전방낙법, 우측방낙법, 좌측방낙법, 후방낙법, 회전낙법, 공중회전낙법, 공중교차낙법 등 다양했다. 어떤 전우는 전우들 열두명을 엎드리게 하고 그 위를 날아넘었다. 물론 일정거리에서 뛰어야 가능한 낙법이지만 말이다. 공중회전낙법이나 공중교차낙법은 아래에서 낙법하는 조원이 최대한 몸을 웅크려 자세를 낮춰주는 게 좋다. 전자에 말한 열두명짜리 낙법도 마찬가지다. 서로 몸을 바짝 밀착시켜 길이를 좁혀야 한다. 열두명이 헐렁한 간격으로 엎드리면 하나님도 넘지 못할 것이다. 

 

수없이 반복되는 훈련에선 실수도 따른다. 공중교차낙법 때에도 그랬다. 마주오는 전우와 임의로 약속한 지점에서 내가 몸을 띄우고 전우가 몸을 웅크려 뒹구는 과정이었는데 그만 전우의 다리 한쪽이 풀리면서 그 위를 넘던 내 머리를 쳤다. 나는 순간 균형을 잃고 연병장 맨바닥으로 떨어졌다. 믿지 못하겠지만 매트 같은 건 깔지 않았다. 모든 낙법이 실전을 위주로 이루어져 연병장 맨땅에서 이루어졌다. 잘못 떨어져 착지할 때의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작은 돌멩이 하나에도 뼈가 부러지는 통증이 따랐다. 낙법자세가 불량한 전우는 어깨나 팔뚝에 찰과상이 끊이지 않았다. 아무튼 이 때 허리가 삐끗하는 느낌을 받았는데 본운동을 마치고 몸을 풀면서 가볍게 회전낙법을 할 때에도 똑같은 통증이 이어졌다. 지난 경험으로 보면 이날의 충격이 지금까지 데미지로 이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군대 경험을 부정적으로 회상하고 싶진 않다. 그 또한 내 인생의 아름다운 추억이다.

 

 

 

 

 

 

 

 

 

'꺼꾸리'를 설치해놓고 문제의 부위를 이완시키는 운동을 한다. 증세가 심할 땐 이 방법도 도움이 된다. 일시적이지만... 평소 얼굴이 말랐다는 소리를 듣지만 체중이 75kg이다. 한때는 다부지다는 소리도 종종 들었다. 한창 운동할 때는 마주오는 깍두기 스타일과 일부러 몸을 부닥뜨리고 싶은 충동도 불쑥 일곤 했다. 그 젊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나고 보면 아름답지 않은 일이 없다. 내 인생에 미운 사람은 없다. 모두 용서하고 싶다. 다만 비인간적인 행태만큼은 없었으면 한다. 침상 모서리를 발판 삼아 맞은편 침상 모서리에 머리 박고 원산폭격케하는 기합, 예고 없이 군화발로 허리 같은 급소를 걷어차는 행위는 비열하다. 화장실 뒤편 수풀 우거진 곳에 전우들을 발가벗겨 놓고 모기파티 시키는 기합도 마찬가지다. 수통 뚜껑에 머리박고 원산폭격, 치약뚜껑에...

 

 

 

2006년 상무관

 

 

 

 

 

 

 

 

 

지금부터 나는 내 몸의 건강을 위해 노력하련다. 예전의 건강을 되찾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긍정적인 마인드가 중요하다. 세상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용서하는 것이다. 지금 내게 요원한 건 오직 하나, 긍정의 강한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