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휴일의 단상

펜과잉크 2005. 7. 30. 11:08

여름철에 창문을 열어놓고 있으면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며칠 전 새벽엔 웬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려 창문을 내다보니 고양이 몇 마리가 모여 교미를 하고 있었다. '저것들이 사람처럼 수시로 섹스를 하면 정말 시끄럽겠군' 생각을 하며 억지로 잠을 청했다.

한참 단잠에 빠져있을 식전 해장에 딸랑딸랑 종을 울리며 골목을 달려다니는 두부장수를 한번쯤은 만나 자제해달라고 말하고 싶지만 마음만 무성한 채 벌써 일년이 지났다. 하긴 그 사람이 매일 잠을 방해하는 건 아니니...

오늘은 휴일. 늘어지게 잤다. 잠결에 스피커소리가 들린다.
"수박 한 통에 삼천원..."
그 소리가 이어졌다. 난 지나가는 차소리려니 하고 몸을 돌려누웠다. 하지만 여전히 스피커소리가 들려왔다. 귀찮은 마음에 얼른 닫으려다 무의식적으로 창문 틈을 보게되었다. 거기엔 허름한 중년 남자가 리어커에 수박을 가득 싣고 서 있었다.

그런 모습, 그러니까 리어커에 20-30통 정도의 수박을 싣고 다니는 뜨내기는 내 고향 부여 시장통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도시의 스피커소리는 대개 방문을 박차고 나가기 무섭게 저만치 지나가는 트럭 전용물 아닌가?

나는 후다닥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모두 싱싱한 수박들이 실려있었다. 시골 출신이고, 어릴 적에 수박 농사를 짓는 부모님을 도우면서 어지간한 상식을 갖춘 몸이다. 꼭지가 싱싱한 수박은 달리 생각할 게 없다.

리어커를 잡은 손은 거칠고 허름하였으되 그 안에 실린 수박은 금방 밭에서 온 듯 싱싱해보였다. 얼른 두 개를 샀다.
"아저씨 때문에 잠이 깨었지만 기분 좋습니다. 하하..."
남자도 즐거운 모양이었다. 금방 두 세 명의 주민들이 다가왔다.

싱싱한 수박과 여유로운 시간... 아들과 함께 먹으리! 아들의 핸드폰엔 제 어미 전화번호를 '영부인'이라고 입력해놨다. 집은 '청와대'란다. 그럼 내가 대통령이 되는 셈인가? 오늘밤 로또복권이나 맞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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