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 비리사건에 휘말렸다가 역전의 주인공이 된 철도 기관사
자제 서세원은 한때 음주운전 경력의 신은경과 SBS-TV <좋은세상 만들기>를 이끌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좋은세상 만들기> 프로의 '장수퀴즈'를 기억할줄 믿는다.
농사에 찌든 우리네 부모님들이 마이크 앞에 엉거주춤, 그러나
대한민국 최고 당당한 자세로 버티고 서서 '필구야, 에비다. 에비 지금 에쏘비에쓰 텔레비죤에 나왔다. 너들도 에쏘비에쓰 텔레비죤 보고
있겄쟈?'하시던 그 프로. '꼬랑지'를 흔들며 다가오는 개를 발로 걷어차는 시늉을 한 뒤 다시 카메라를 바라보며 '그란디 이러케 말하먼 지
소리가 서울 아들헌티까장 들린대유?' 하시며 카메라 렌즈에 얼굴을 들이밀어 NG를 내곤 하시던 우리의 부모님들......
한 번은
<좋은세상 만들기> 제작팀이 전라북도 김제 어느 마을을 방문하였다. 그래, 거기서도 부모님들 몇이 뽑혀 나와 카메라 앞에 서서 한
마디씩 쏟아놓는 순서가 있었다. 세 번째 나온 분이던가? 칠순을 바라보는 연세의 노인 한 분이 카메라 앞에 서더니 다음과 같이 울부짖는
것이었다.
"창현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창현아. 이 에비 목소리가 들리느냐? 네가 여섯살 시절에 집을 나간 뒤 이 에비는 한 순간도
너를 잊을 수가 없었다. 하나 밖에 없는 내 아들 창현아, 보고 싶구나! 삼십년이 흐르도록 어디 있느냐? .....창현아! 창현아!
카메라는 고령이 넘은 병든 할머니한테 다가갔다.
"내 손자 창현아, 내 새끼야! 널 보기 전엔 절때루 눈을 감지
않을란다."
부인의 얼굴도 포착한다.
"저이가유. 우리 창현이 아니면 아무 것도 필요 없다구유. 그 애 잃어버린 삼십년동안
집도 안 고치구유. 아들 하나 더 낳자는 지 사정두 마다하구유. 오직 창현이만 부르며 살어유..... 흐흐흑!"
서울에 사는
서른여섯의 남자가 이 방송을 시청하게 되었다. 그는 여섯살쯤 되던 해에 마을 근처의 기차역 화물객차에 올라가 놀다가 깜빡 잠이 들어 고향을
잃어버린 고아였다. 기차가 출발하여 그만 고향과 부모를 잃어버린 것이다.
거지 소년과 공장살이를 거쳐 이제 서른여섯의 성인으로 슬하에 1남 1녀를 둔
어엿한 가장이었다. 성장하는 동안 그는 여섯살 시절 기억을 더듬어 수도 없이 철로변 마을을 헤매었다고 한다. 고향을 찾기 위해서였다. 아이들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존재를 물으면 오래 전에 돌아가셨다는 말로 아픔을 삭여왔다고 한다.
남자의 제보를 받은 제작진이 김제의 노인과
연락을 취하였다.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설레임에 노인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제작진은 이 남자에게 기차역에서부터 옛집을 찾아갈 수 있느냐고
묻는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하여 제작진은 그에게 기차역에서 기억을 더듬어 고향집까지 찾아가기를 주문한다. 남자의 뒤를 출가한 누나가
조심스럽게 따라밟는다.
다시 김제의 농촌마을. 온 동네 어른들이 '창현이네' 집 앞에 구름처럼 모여있다. 곧 고향 마을 모퉁이를
걸어오는 서른여섯의 남자가 보인다. 남자와 노인의 거리가 지척으로 가까워지고......
노인은 앞에 선 아들을 부둥켜 안으며
다음과 같이 절규한다.
"만세! 우리 창현이를 찾았다! 만세! ......만세!"
온 세상이 눈물 범벅......
고령의 할머니도 손자의 손을 잡고 목이 메인다.
"우리 창현이 어디 갔다 이제 왔노? 이제 죽어도 한이 없다!"
고령의 할머니와 칠순에 가까운 아버지와 육순이 넘은 어머니...... 서른여섯의 아들과 그 나이의 예쁜 며느리와 열살 남짓의
손자와 토끼 같은 손녀...... 삼십년만에 가족이 한데 모인 것이다. 그렇게 또 하나의 좋은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