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아, 전쟁...

펜과잉크 2005. 8. 3. 01:59


오늘 자 한겨레신문 8면엔 아주 중요한 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평화, 멀지만 가야할 길>이란 타이틀 연재의 첫 편 "학살"이란 제목의 글을 읽으면 6.25 전쟁의 참혹한 비극들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 전쟁 광기에 스러진 민간인 원혼이 100만명을 헤아린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오직 국군이나 미군, 혹은 경찰이나 우익 민간단체에 의한 피해라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순수한 전쟁의 피해자들은 숫자에 포함이 되지 않는 것이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적과 대치해 싸워야 할 상황에서 우리끼리 명분을 씌워 무참한 살육을 서슴치 않았던 것이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지역으로 거창, 거제, 화순, 함평 등 무수한 지역들이 거론되고 있다. 대전도 예외가 아니다. 내 고향 부여지역도 포함되어 있다.

 


-유족들이 전하는 죽음은 참혹하고 황당하다. 경북 문경 석달동에선 49년 12월 24일 국군이 '공비 소탕'을 이유로 마을 주민 127명 가운데 86명을 죽였다. 이 가운데 5명은 태어난지 1년도 안 된 이름조차 없는 젖먹이였는데 호적에는 사망 이유가 '공비'라고 적혀 있다. 누군 보도연맹원이란 이유로 총살되어 불에 타 죽고 누군 웅덩이에 묻혀 죽었다. 그들 중 대다수는 좌우익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일반 '양민'이었다는 게 학자들의 지적이다.

……전쟁 직후 이승만 정권은 민간인 피학살자들을 모두 좌익으로 분류했고 유가족들을 '부역자'라 부르며 연좌제 올가미를 덧씌웠다. 죽은 자는 물론 살아남은 자들 또한 평생을 '이등 국민'으로 살아야 했던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이 '국가안보'의 이름으로 자행되었고, 또 '국가안보'란 이름으로 숨겨져 왔다.-                                                                   * 2003. 7. 3(목) 한겨레신문 8면 기사 移

 

<만다라>의 저자 김성동을 기억하는 분이 계실 것이다. 그는 한때 파계승이란 허울로 덧씌워져 불교 종단에서조차 버림받은 인물이었다. 그의 소설인지 안정효의 전쟁소설(하얀 전쟁 等)인지 기억이 확실치는 않지만 두 분 중 한 분의 소설 속에 다음과 같은 장면이 묘사된다.

6. 25 전쟁 중 어린 소년이 엄마를 따라 피난길에 오른다. 둘은 피곤에 지쳐 잠이 들었다가 일행과 떨어지며 길을 잃는다. 다시 길을 찾은 둘은 야밤에 한적한 지점의 국군초소를 통과하게 된다. 국군이 엄마를 세워놓고 꼬치꼬치 심문한다. 이윽고 둘은 국군을 따라 초소안으로 들어선다. 소년이 보는 앞에서 국군은 뭔가를 엄마에게 '주문'한다.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망설이던 소년의 엄마. 소년은 두 사람의 표정을 빼놓지 않고 읽는다.

 

한참 후, 작심한듯 엄마는 국군을 따라 밖으로 나간다. 이윽고 소년의 귓전에 뭔가 희미한 소리가 들려온다. 호기심 많은 소년이 소리 죽여 접근한 목전에서 국군과 엄마 두 사람의 野合(야합)이 이루어지고 있다. 목단치마 걷혀진 엄마의 허연 다리가 활짝 열려진 사이로 국군의 커다란 궁둥이가 들썩이고 있는 것이다. 그 몫으로 모자는 국군 초소를 무사히 통과하게 된다.


위와 같은 말세적 풍경은 티끌에 불과하다. 어느 국내 기자는 중동국가들의 끊임없는 충돌과 분쟁을 바라보면서 전쟁 중 피해 순위로 '內紛에 依한 虐殺' 을 '戰死'보다 우선 순위에 놓은 바 있다. 뼈를 건드리는 지적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간다. 거기엔 법과 사회상규와 윤리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게 깡그리 배제된 야만적인 세계로 돌변할 뿐이다. 불교에서 아비지옥의 고통을 형용했던 바로 阿鼻叫喚의 참상 밖엔 없다.

위 한겨레신문 기사 일부를 인용한 부분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은 '前後'란 전제를 바탕으로 깔고 조사한 지역 외에도 새로운 곳들이 발굴되고 있다.

 

나는 한때 제주일보 기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발행한 <4.3 사건의 실체>라는 책을 아주 진지하게 읽은 적이 있다. 4.3 사건의 원인과 실상, 대책까지 소상히 밝히고 있는 그 책은 문란했던 정치 판도의 아수라에서 피해를 고스란이 떠 안아야했던 제주도 양민들의 무참한 피해 실상을 파격적으로 고발하고 있다.

 

그 뿐이 아니다. 오늘 한겨레신문에서 미처 지적되지 않는 지역 중에서 내가 몇 번을 기록을 찾아 헤맸던 충남 논산군 성동면의 참상은 표시마저 되지 않았다. 지주라는 이유로 혹은 지식인이라는 이름으로 온 몸이 묶여 집단으로 우물 속에 처박혀진 채 돌과 흙으로 무참히 죽어간 그 숱한 원혼들이 빠져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생매장 사건은 대전과 화성 지역에서도 수없이 드러나고 있다. 그들 양민은 모두 우익 민간단체에 의해 살육 당했다.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가?

한반도에 또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기사의 종부는 그렇게 묻고 있다. 이에 피터브룩스 전 미국 국방부 차관보는 "전쟁 초기 몇시간 혹은 며칠간 한국은 '지옥과 같은 환경'이 조성될 것" 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미국이 '북폭'을 심각하게 고려하던 94년 5월 19일 윌리엄 페리 당시 미 국방장관은 군 통수권자인 빌 클린턴 대통령한테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고…….

"최초 3개월간 미군 사상자 5만2천명, 한국군 사상자 49만명은 물론이고, 여기에 더한 엄청난 수의 북한군과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할 것……."

이 땅에 전쟁은 없어야 한다.

 

* 2003. 7. 3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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