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땜장이

펜과잉크 2005. 8. 4. 00:59

 

세상은 어디에나 그 만한 가치로 실재하는 것들이 있어서 만면에 제 역할을 고루 해내는 필요 분자로 연결되어 있기 마련이다. 가령 마을의 이장이 한 동네를 대표하여 면사무소 회의실에서 주민의 권익을 주장한다면 부녀회장은 여성 편익의 안건을 제출하거나 수습 처리하는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버튼 하나로 개폐가 용이한 시골 버스를 보게 되더라도 운전기사 후미에는 조수와 차장이 따라붙고 필요에 따라서는 실습 조수까지 여벌로 붙어 다닌다. 어쩌다 험한 시골길에서 펑크라도 만나는 날엔 손놀림 바쁜 조수 곁에 몽키스패너를 나르는 실습 조수가 나름대로 역할 수행에 분주하다. 그러니 아이스크림 공장의 코흘리개 몰골이라도 허당으로 몰아쳐선 안될 것이며 허청의 무딘 낫자루 하나 예사롭게 볼 일이 아니다. <삼포가는 길>에서 문오장이 주연이었다면 안병경이나 니나노 집 출신의 차화연 또한 그 만한 역할로 작품을 빛낸 인물들이 아니었던가?

여기서 말하는 땜장이도 그런 존재이다. 비록 생긴 건 석달 열흘을 산 속에서 헤맨 원통의 심마니 꼴일지언정 그 또한 남다른 손재주 하나로 고을고을 시름거리를 해결해주며 떠도는 긴요한 목숨붙이인 것이다. 굴뚝쏘시개를 둘러메고 앞산 고봉이 맞창 나도록 '뚫어, 뻥!'을 외치는 구들 청소부와는 달리 땜장이의 지정 부르스는 '뭐든지 다 때워'로 결론 내릴 수 있다.

"가지고만 와유. 뚝딱하면 되니께."

자신 있는 태도 억양처럼 팽나무 아래에 거적을 깔아놓은 그의 면전에 양은그릇이나 세숫대야를 들고 나가면 자귀 만한 망치로 철제 모탕에 놓은 구멍을 다독인 후 감쪽같이 맞창을 땜질해버린다. 달인에 가까운 손질 앞엔 양은그릇 세숫대야만 통하는 건 아니다. 왈패 장남이 여물 쇠스랑으로 뚫어놓은 사랑채 가마솥도 쑥 뽑아 지게로 지고 나갈 경우 몇 분도 안되어 손가락 굵기 만한 구멍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제 원형으로 복원되고야 만다. 요강, 장독 뚜껑, 자루 부러진 육철낫, 막내의 도시락에 뚫린 미세한 바늘구멍도 모두 꼼짝 마라는 식이다.

샘안집 정구 마누라처럼 촉새같이 생긴 여편네가 노름에 집안 살림을 팽개친 남편의 버릇이라도 한탄할라치면 땜장이는 잠시 거적을 말아 바쁜 손길을 접어놓고, 며칠 전 태풍에 뜯겨져 날아간 남의 집 처마 차양도 말끔히 손질해주곤 한다. 그렇게 되면 정구 마누라 처럼 촉새같이 생긴 여편네는 안채 작은 솥에 고봉으로 앉혀놓은 미밥에다 매콤함이 제격인 겉절이 밥상으로라도 보답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저 사람 하나면 동네 구멍은 다 해결된다니께."
"맞어. 꺼꾸리네 여물그릇도 때웠다는구먼."
"여물그릇 뿐여? 투레박(두레박) 밑창까장 몽땅 때워놨댜."
"흥복이네 인두도 삐빠(페이퍼)루다가 빤딱빤딱……."
"나이만 쬐금 칭하(層下)지면 남진이 안 부러울 사람인디."

비록 지명(知命)의 문턱 너머로 보이는 손두덩은 삼 년 서러운 머슴 같은 꼴이었지만, 어디 가서든 인심은 고루 챙길 사람 마냥 인덕이 넘치는 인상이었다.

하지만, 입들이 하나 둘 모이면 게걸스러운 것이나 똥간의 바가지 주둥이까지 빈대 폼으로 끼어 들듯이 며칠 땜장이가 체류하는 동안 고을엔 흉흉한 소문이 나돌기도 하였으니. 그래서 한번은 싹수 노란 주둥이가 안골 삼림(森林)을 둘러 보러온 면사무소 산림계(산림감시 부서) 잠바한테 몇 마디 귀뜸 하였다가 지서로 내통이 되는 바람에 땜장이가 곤혹을 치른 적도 있었다. 일년 내내 크로바 타자기 한번 써보지 않은 지서 순경이 그를 데려다가 보안관찰 차원의 취조를 하였다는 것이다.

"왜 남의 지붕에 널어놓은 고추까지도 신경 쓰고 지랄여? 당신 빨갱이 아녀? 도둑인감?"

호랑이 박제를 메고 다니며 위암 말기 노인네나 철지난 아이의 돌사진을 찍어주던 사진사가 간첩으로 오인 받았을 때처럼 그 역시도 흡사한 부류로 낙인 찍혀 앉아 일어서를 수없이 반복하고서야 지서 간판을 뒤로 하였다는 후문이다. 한편 땜장이의 얼굴에는 밑 모를 시름과 그늘이 교차하기도 하였으나 거적을 챙겨 고을 떠나는 후미로는 여전히 든든한 인덕이 그대로 내보이는 풍경이었다.

요즘 아이들에게 땜장이 얘기를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여물솥, 지게, 요강, 두레박, 굴뚝쑤시개, 똥바가지……. 모르긴 몰라도 당나귀 귀에 대고 천자문을 읊는 격이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들입다 몰려온 외세문물과 급변하는 생활 환경으로 인하여 옛 정취와는 상이하게 변해버린 세태가 안타깝기도 하다.

세상살이, 오합의 끄나풀들이 다 모여 살아가는 판에 맞창 난 인심을 이어주는 땜장이 같은 사람들은 없을까? 어제 돌아선 사람의 인심까지도 화해시켜 땜질해주는 매개 역할이 아쉽기만 하다. 앞 뒷집 면상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나부터도 그런 인심 앞에선 마음을 확 터놓고 싶다. 그리하여 세상의 밑뿌리까지도 맞닿아 서로가 껄껄 대소할 수 있는 날을 그려보는 것이다.

구멍난 가마솥, 두레박, 양은그릇, 팔푼이, 개똥, 판자차양……. 두루 뚫린 맞창들이 한데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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