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고향 생각

느릅나무의 효험

펜과잉크 2005. 8. 20. 11:31

느릅나무를 아는가? 시골의 골짜기 혹은 개울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나무 말이다. 낙엽 활엽 교목으로 잎새가 자잘하고 촘촘하다. 이 느릅나무엔 다음과 같은 효험이 있다.

느릅나무 뿌리나 밑둥의 껍질을 벗겨 묽게 빻아 인체 종기 부위에 붙이면 고름을 뽑아내는 특효가 있다. 느릅나무 뿌리가 붙어있던 종기 정점엔 작은 구멍이 뚫린다. 그 안에 고여있는 고름이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종기 부위를 눌러 약간의 피고름을 뽑아 마무리하면 완치가 되었다. 이는 단순히 들어 익힌 풍문이 아니라 어려서 눈으로 본 경험을 토대로 얘기하는 것이다. 어깨 부위 종기에 느릅나무 뿌리를 빻아 붙인 아이가 하루만에 누런 고름을 쏟고 정상으로 활동하는 걸 보았다.

고증 차원에서 부연하자면, 어렸을 적에 아랫집에 병태라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내 아우랑 동갑이어서 자연히 우리집 출입이 잦았다. 하루는 이 아이가 집에 들렀는데 목을 움직이지 못하고 어설픈 동작을 보이는 것이었다. 처음엔 담(痰) 결린 현상이려니 하다가 어머니께서 확인해보시곤 종기라고 하셔서 큰 고름병인 줄 알았다. 어머니께선 집 근처 느릅나무에서 껍질 일부를 떼어와 묽게 빻아 병태의 뒷목에 붙여주셨다. 그리곤 '내일 저녁 때에 꼭 다시 오너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이튿날 저녁 때, 병태가 다시 왔다. 어머니께선 약간의 응급조치 준비를 하시곤 병태를 앞에 앉히셨다. 그게 무슨 신기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이들이 빙 둘러 지켜보았다. 윗옷을 벗기자 종기의 크기가 현저히 작아진 상태였다. 어머니께선 조심스레 느릅나무 뿌리를 떼어내셨는데, 떼어내는 순간 누런 고름이 등으로 주루룩 흘러내렸다. 종기엔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어머니께서 종기 부위를 손으로 눌러 약간의 피고름을 뽑아 내셨고 곧 괜찮아질 거라고 말씀하셨다. 병태는 피고름을 짜는 순간 고통스런 신음을 내었지만 곧 정상의 몸으로 돌아와 쌩쌩 뛰어 다녔다. 이것이 내가 경험한 느릅나무의 효력이다. 병태 뿐만이 아니다.

어려서 큰집 머슴의 몸에 거머리 자국이 도져 종기로 변했을 때에도 느릅나무 뿌리를 붙여 완치하였다. 그 머슴은 지랑풀처럼 연한 줄기의 풀로 인형을 만들어 내게 건네주기도 했는데, 무당이 굿을 할 때 떡판 앞에 놓는 저주의 굿것과 흡사하여 몇 번 만지다가 버리곤 했다.

시골에 체류하다가 인체에 종기가 발생하면 느릅나무 뿌리나 껍질을 빻아 붙여볼 일이다. 민간요법은 도구에 의존하는 절개술이나 면역을 기르는 현대 의약품과는 다른 효과를 불러오기에 권장할만 하다. 느릅나무 뿌리는 내 기억에 신기한 효험으로 남아 있다.

'雜記 > 고향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망심산  (0) 2005.09.17
부여땅 자연미술학교  (0) 2005.09.14
꽃 피는 산골  (0) 2005.08.16
충청도 사투리의 해학  (0) 2005.07.22
친구 양현이  (0) 2005.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