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버마재비

펜과잉크 2005. 9. 11. 02:00

 

한때 박완일 씨의 강의 테잎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전국불교신도협회장을 지낸 박씨는 훗날 정치에도 발을 디뎠으나 명성을 얻진 못했다. 그 분 강의에 '버마재비'라는 말이 나온다. 버마재비의 사전적 의미는 사마귀를 뜻하나 대개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게 통설이다.

 

미얀마 해변의 동굴 천장에 붙어 사는 제비의 다른 말로 곡해할 수 있으나 표기부터 다르니 큰 착오가 없을줄 믿는다. 여기서 잠깐 '버마제비'에 대해 얘기하고 가자면, 미얀마 해변의 주민들이 동굴 천정에 사는 제비집을 헐어 홍콩 등지에 최고 요리감으로 수출하는 대목이다. 말레이지아 혹은 필리핀의 해변 동굴에서도 발견되는 이 제비의 둥지는 타액을 모테로 지어져 미식가들의 최고 요리감으로 선호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진흙의 응결된 행태와는 사뭇 다른 꼴이었다. 언젠가 본 TV 방영 장면을 토대로 하자면 버마제비 둥지는 진흙보다 미세한 깃털 같은 것에 의존한 단촐한 형식이었다. 까마득한 동굴 천장까지 나무 사다리에 의존한 채 제비집을 따는 원주민들의 삶이 아주 독특해보였다.  

 

'버마재비' 도입이 무색해지는 것 같아 원론으로 돌아가겠다. 박완일 씨는 대전시민회관 강론에서 '버마재비 같은 놈이 나타나서'라는 표현을 한다. 당시 강론에 비추어 보면 권력에 흡착(吸着)하여 기생하는 목불인견의 따라지들을 빈정대는 말이다. 박완일 씨의 '버마재비'는 고사성어 '당랑규선(蟬)'과도 맥락을 하지 않을까 한다.

 

우리 주위에도 버마재비들이 있다. 최고의 장(長)이 바뀌면 그 사람 휘하로 잽싸게 위치 이동하는 '것'들이 보인다. 취미 생활도 마찬가지다. 가령 최고의 장(長) 취미가 등산이라고 하면 등산부 인원이 급격히 증가한다. 한 번은 최고의 장(長) 취미가 볼링이라고 하니 볼링 붐이 우후죽순처럼 일었다. 볼링 관련 행사도 있었다. 깐에 트로피도 준비하고... 그러다가 최고의 장(長)이 발령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흩어지고 말았다.

 

예를 들어 이런 것도 연상해볼 수 있겠다. 5년을 두고 각 1년 임기의 장(長)이 다섯번 바뀌었다면 '버마재비'의 집엔 5년동안 다녀간 최고의 장(長) 취미에 따라 볼링 장비, 검도 장비, 자동차 장비, 요트 장비, 낚시 장비가 쌓여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발상이 전혀 근거없다고 누가 감히 단정할 수 있는가?

 

앞으로 공직사회에 개인능력제라는 게 도입된다고 한다. 일각에선 고위직의 경우 내년부터 전자에 따라 10% 감원을 추진중이라는 얘기까지 나돈다. 엄격히 심사하여 직장이나 조직에 해가 되는 인물이라면 배제함이 원칙이겠으나 심사를 어떤 기준에 맞출 것인가 하는 부분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단순히 개인 실적에 맞출 것인가? 실적이라면 어떤 실적을 말하는가? 목소리 큰 사람을 중심으로 심사할 것인가? 볼링, 검도, 자동차, 요트, 낚시 같은 취미 생활에 밝은 '버마재비'들을 위주로 심사할 것인가? 반경(半徑) 혹은 사경(私徑) 안에 있는 사람들? 과연 학연, 지연과 같은 기존의 병폐요소를 극복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도 단언할 수 없는 게 그간의 경험이다.

 

위와 같은 제도는 일각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킬 수 있지만 자못 변질된 형태로 나타날 소지가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과거 전교조처럼 한 무더기 잘라내고 몇 년 후 국가가 몽땅 변상해내는 꼴은 되지 않을지... 오늘의 개혁은 내일의 정권에 의하여 씻을 수 없는 죄가 될 수도 있다. 아비규환의 춘추전국시대를 목전에 둔 묘한 흐름이 폭풍전야를 연상케하는 현실이다. 

 

조직은 2인 이상이 모여 결성된다 했던가? 둘만 모이면 남을 헐뜯기 바쁜 세상... 그래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마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만 아름다울 뿐, 둘만 모이면 시기, 질투, 아집, 증오, 저주가 싹튼다는 주장이다. 폭력, 절도, 강도, 강간, 살인...  

 

얼마 전,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때 점호시간에 교관이 해주던 말이 생각난다. 그는 전체 교육생을 향해 '아, 좋아 좋아!'라는 말을 따라 해보라는 것이었다.

"아, 좋아 좋아!"

"아, 좋아 좋아!"

그 말을 몇 번 하고 나니 정말 좋아지는 것 같았다. 기분이 좋아지고, 내 옆의 사람이 좋아지고, 세상이 좋아지는 심정이었다.

 

눈 앞의 매미에만 눈이 어두운 당랑규선의 버마재비이든 까마득한 동굴 천장에 달라붙어 기생하는 버마제비이든 시류에만 편승하여 아첨떠는 따라지들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것만이 맑고 깨끗한 사회를 앞당기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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