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가장 즐겨보는 TV는 케이블 채널 402번 '네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이다. 오래 전부터 애청자이다. 주말의 경우 채널을 고정시키고 앉아 새벽까지 시청할 때도 있다. 중간 광고 방송이 지루할 때도 있지만 막간의 시간에 책을 훑어본다든가 하면 금새 다음 방송으로 이어진다.
며칠 전, 그 채널에서 일본의 '거미 싸움'을 소개한 적이 있다. 나고야쪽 지방 도시에서 벌어지는 거미 싸움엔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여 평소 훈련 시킨 애완용 거미를 전사(?)로 출전시킨다. 대개 호랑이거미로 우리나라 산야초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종(種)이다. 몸에 호랑이무늬를 두르고 있는 이 거미는 매우 민첩하여 일순 먹이를 덮치는 폼이 사마귀를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시합에 참가한 거미는 인간이 조종하는 막대기 위에서 쌍방을 견제하며 공격해 들어간다. 공격과 방어의 민첩한 동작이 오가다가 어느 순간 한쪽이 기선을 제압해버리면 승패가 갈린다. 놀라운 점은 외나무 다리 위에서 공방전을 벌이다가 한쪽이 세(勢)에 밀려 허공에 매달리면 막대기 위의 거미가 잽싸게 줄을 끊어버리는 동작이다. 눈 깜짝할 새 벌어지는 이 공격은 칼로써 무예를 연마하는 사무라이 검법(劍法)과도 통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사무라이들이 호랑이거미 공격술을 모방하여 하나의 검법으로 완성시켰다는 것이다.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어쩌면 인간과 거미가 하나로 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시합에 이긴 거미의 주인이 내지르는 환호성이나 피배한 거미의 주인이 흘리는 눈물은 단순히 거미라는 작은 곤충의 싸움만은 아닐 것이란 판단 때문이었다. 그들에게 거미는 간절한 그 무엇이었다. 분출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거미를 통해 재현된다고나 할까?
과거 시골에서 자랄 때 본 거미 중엔 아주 영리한 작전을 쓰는 거미도 있었다. 덫(罔)을 쳐놓고 숨어 기다리는 것이다. 거미줄 밖에서 숨어 있다가 먹이가 걸려 그물이 흔들리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쏜살같이 달려들어 먹이를 친친 결박하곤 했다. 거미는 한 군데 정착하는 버릇이 있어 사람이 드나드는 문간에 친 거미줄을 제거하면 이튿날 똑같은 자리에 다시 집을 짓는 걸 볼 수 있다.
문득 거미의 모습이 떠오른다. 네셔널 지오그래픽에서의 호랑이거미와 고향에서 본 영리한 거미와 오딜롱 르동의 '우는 거미'가 하나의 형태로 조합되는 신비한 환상... 고향에 가면 우리의 토종 호랑이거미에 대해 관찰해봐야겠다.
* 사진 : 호랑이거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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