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서울 나들이

펜과잉크 2006. 3. 26. 01:43

 

오후,

차를 몰고 서울로 향했다. 감기 기운이 있었지만 '증세'일 뿐이고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으므로 얼마든지 움직일 수가 있었다. 토요일의 경인고속도로는 지극히 원만한 흐름이었다. 도화동 입로에서 신월인터체인지까지 10여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영등포경찰서를 지나 국회의사당 앞을 경유하니 서강대교가 기다리고 있다.

   


 * 서강대교를 달리면서 본 강북 신촌 방향

 

서강대교를 건너면 광흥창역이다. 직진하면 신촌로터리에 닿는 것이다. 로터리 못미쳐 좌회전을 하면 홍익대 입구이고, 로터리에서 우회전을 하면 서강대 방향이다. 좌측 대각으로 가면 홍익서점을 지나 연세대 방향으로 이어진다.

 

                             
                              * 신촌로터리 이정표

 

서강대교를 건너 신촌로터리를 경유한 후 광화문 쪽으로 향했다. 태평양화장품 빌딩을 지나니 광화문사거리였다. 거기서 차는 다소 복잡한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주말의 종로는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신호에 따라 직진하니 곧바로 종각이었다. '빠이롯트 만년필' 간판이 시야에 들아왔다. 그 일대는 내 소설의 무대이기도 하다. 맞은편 YMCA 회관 뒷편이 인사동 고옥촌이다.

 


 * 빠이롯트 만년필 대리점 뒷쪽이 옛 종로서적 건물

 

거길 조금 지나니 낙원동 입구 사거리이다. 인사동 초입 횡단보도인지라 행인들로 북적였다. 신호등이 바뀌면서 횡단보도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이 신기해보였다. 사실 횡단보도가 군중으로 가득찼던 기억은 아주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요즘은 시내에서도 보기 드문 풍경이다. 그만큼 사람이 없어진 탓일까? 상권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현상이기도 하다.

 


 * 인사동 초입의 횡단보도. 왼쪽이 낙원상가 방향이고 오른쪽이 청계2가쪽

 

그 신호를 지나면서 동대문까지는 심각한 교통체증이 이어졌다. 간신히 동대문운동장 옆 공터에 차를 주차시키고 카메라만 달랑 멘 채 풍물시장으로 향했다. 현재 주말마다 동대문운동장 안에서 열리는 풍물시장은 과거 중구 황학동에 있던 게 옮겨왔다고 한다. 규모는 그때보다 더 커진 것으로 보였다. 그땐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 시장이었고 현재는 조직적으로 운영되는 느낌이 강하다. 예를 들면 서울시에서 지원을 한다든가...

 


 * 동대문운동장 풍물시장 입구

 

풍물시장엔 없는 게 없을 정도다. 단추를 파는 좌판부터 군용품, 중고 가죽잠바, 코트, 청바지, 총포, 도검, 포르노 테이프, 중고 바이올린, 놋수저, 요강, 대패, 끌이나 정, 군 부대 마크, 군화, 여자들 자위할 때 쓰는 커다란 실리콘 자지, 홀아비들 눈 감고 삽입하라고 만든 실리콘 음부, 굼벵이 모양의 부로치, 옷핀, 자크, 지압기, 만보기, 시계, 모자, 무좀약, 옷 염색약, 침낭, 텐트 등등...

 


 * 풍물시장(1)

 

외제 안경만 진열해놓고 파는 좌판도 있다. 과거 밀수품 관련 업무 과정을 거친 경험이 있어 유심히 보니 조종사들이 쓰는 오리지날 라이반이다. 하긴 요즘은 공공연히 외국 물품이 국내로 들어온다고 들었다.

  


 * 풍물시장(2) : 외국 안경 좌판.  홍보용 사진이 아니므로 따로 편집하지 않음.

 

그 쯤에서 풍물시장을 나와 청계천 건너 동대문종합상가 D동 골목으로 향했다. 브라질 축구선수 펠레의 양복을 맞춘 곳으로 유명한 양복점 사장과 약속이 있어서였다. 그는 매사 꼼꼼한 성격으로 보였다. 나는 여유있는 호주머니가 아니었으므로 진실로 사정을 이야기하고, 그리하여 좋은 품질의 맞춤 옷을 받기로 약속이 오간 상태였다. 그러니까 오늘이 가봉을 하는 날인 것이다. 원래는 어제였는데 시간이 없어 오늘로 연기됐다.

 


 * 양복점 입구

 

옷을 맞추러 동대문까지 가느냐고 지적하는 분이 있을지 모른다. 사실 난 양복 스타일을 선호하는 성격이 아니다. 우리 부서에서도 청바지 같은 캐주얼 복장을 즐겨 입는 사람은 내가 유독 잦다. 업무의 성격상 넥타이 착용을 강조하지만 크게 유념하지 않는다. 다만 옷이란 깔끔하고 취향에 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렇게 입을 수는 없지 않은가?

   


 * 양복점 사장은 국가 기능사 자격증까지 취득한 사람이었다.

 

양복점 일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청계천에 어둠이 깔려 있었다. 저만치 분수대에서 힘찬 물줄기가 솟구쳤다. 바람이 세게 불었다. 전태일 동상 앞에 이르러 사진을 찍으려 했으나 차들이 가로막고 있어 기회를 미루었다. 

 

차를 세워둔 동대문운동장 옆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에 두산빌딩을 보았다. 얼마 전에 형제들의 경영권 다툼으로 잡음이 잦았던 기업이지만 그 기업 매장은 여전히 붐비고 있었다.

 


 * 두산빌딩 앞

 

동대문운동장 옆 인도에서 잠시 숨을 돌렸다. 거긴 각종 체육사가 집중적으로 입점해있는 곳이다. 과거 운동 선수 출신 직원과 함께 샌드백을 사러 갔던 체육사가 빤히 보이는 곳이었다. 인사나 할 심사였지만 손님들이 많아 체념했다. 어둠 속에서 빗낱에 떨어졌다. 여전히 바람에 세차게 불어왔다.

 

 * 동대문 운동장 옆

 

한숨 돌리고 나니 인천으로 내려갈 일만 남았다. 나는 을지로와 시청을 거쳐 신촌으로 넘어가는 고가를 타기로 했다. 을지로를 지나는 동안 내내 빗낱이 창에 부딪혔다. 시청 앞 광장에선 주말 공연이 열리고 있었는데 빗낱이 떨어지는 가운데에도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나는 시청 본관만 카메라에 담기로 했다.

 


 * 서울 시청 야경

 

왼쪽엔 프레지전트호텔이 자리하고 있었다. 육중한 건물이었지만 저층의 내부 풍경들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었다. 역시 카메라에 담기로 했다.

 


 * 프레지전트호텔

 

거기서 대각으로 좌회전 신호를 받으면 신촌으로 향하는 고가도로에 들어설 수 있다. 신촌만 나오면 집에 다 온 듯하여 안심이 된다.

 


 * 신촌로터리 방향으로 달리면서 찍은 이대 입구

 

신촌로터리를 지나 서강대교를 목전에 두니 왼쪽의 '바그다드' 까페가 눈에 들어온다. 가슴 아픈 추억이 있는 그 곳. 문득 그녀의 고운 눈빛이 떠올랐다. 저 까페는 종택이도 알고 있다. 언젠가 종택이가 서울에 왔을 때 회포를 푼 까페이기도 하다.

 


 * 신촌 'BAGDAD' 까페(1)

 


 * 신촌 'BAGDAD' 까페(2)

 

옛 추억을 뒤로 하고 서강대교를 건너니 여의도 국회의사당 야경이 눈에 잡힌다. 사랑도 추억도 강물처럼 흐르는 것이라 생각하며 나는 차의 액셀레이더에 힘을 주었다.

 


 * 서강대교에서 본 국회의사당

 

참고로 위 사진의 상당수는 운전중에 찍었음을 밝힌다. 고도의 노하우와 집중력이 필요하니 감각이 무딘 사람들은 따라하지 마시라.

 

서울이여, 안녕.

다시 만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