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둑에 라디오를 켜놓고 풀 뽑거나 담배 따던 기억들을 헤아릴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버지, 어머니, 나, 동생들이 불려나가 일하는 밭고랑... 밭 가생이에 켜놓은 라디오는 노동의 힘든 피로를 씻어주기에 안성마춤이었다. 나훈아, 남진, 김상진, 박일남, 오기택, 금과은, 홍민, 조미미, 문주란, 하춘화, 방주연과 같은 가수들의 노래를 들려주었다.
피곤 짓누르는 몸을 거둬 밥 물말아 먹으러 집에 간 사이에도 라디오는 밭둑에서 저 혼자 이런 저런 입담들과 노래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방랑 김삿갓, 만담꾼 장소팔과 고춘자, 삼장법사와 손오공, 파란해골 13호를 박살냈던 마루치와 아라치, 국군의 방송...
명절이면 문래동 방직공장 혹은 구로공단 가발공장에서 일하는 고향 누님들이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마을 큰길을 걷는 모습이 포착되곤 했는데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귀에 대고 걷는 모습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FM 같은 건 상상도 못했던 시절,
AM 전파만 겨우 들을 수 있는 산중의 밤에 건전지 약발조차 떨어져 모기소리처럼 가물거려도 귀때기 바짝 들이대고 김상옥 의사의 거사와 강진 갈갈이 연속극을 들었다. 그 시절의 라디오는 지금도 건전지만으로 잘 나온다. AM 채널로도 충분한 세상이다.
* National PANASONIC
문득 라나에로스프의 <당신의 마음>이란 곡이 떠오른다.
당신의 마음
라나에로스프
바닷가 모래밭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당신을 그립니다
코와 입 그리고
눈과 귀, 턱 밑에 점 하나
입가에 미소까지 그렸지만은, 아~ 아~
마지막 한가지 못 그린 것은
지금도 알 수 없는
당신의 마음
* 라나에로스프
라나에로스프도 어언 초로의 몸이 되어 있으리라. 본문 삽입곡은 <백지로 보낸 편지>를 히트시켰던 김태정 님 음반 수록곡임을 밝힌다.
'雜記 > 이 생각 저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탄면사무소 (0) | 2006.05.03 |
---|---|
[스크랩] 서글픈 사랑아~~~~블루진, (펌) (0) | 2006.05.02 |
PANASONIC 중고 라디오 (0) | 2006.03.27 |
서울 나들이 (0) | 2006.03.26 |
전태일 관련 (0) | 2006.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