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뒷간 추억

펜과잉크 2006. 8. 31. 22:37

 

 

사람들은 불우했던 과거를 얘기하길 싫어하는 것 같다. 감추고 싶어한다. 내 사고방식도 한때는 타성에 젖어 어둡고 쓸쓸했던 옛날을 얘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니 옛날의 모든 경험들이 소중하기 그지없다.

 

내 기억에 우리 동네에서 나무장사를 하지 않은 집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우리 고향엔 부잣집이라고 내놓을만한 집이 한 채도 없었다. 꼴같잖은 땅뙈기 얼마 있다고 거드름 피우는 사람은 두 세 명 가량 있었어도…. 그나마 그 집도 화장실은 '뒷간'으로 통용되는 푸세식이었다. 그러니까 화장실로 보면 우리 집이나 그 사람 집이나 별반 다름이 없었다.

 

푸세식 화장실 얘기가 나와 몇 자 짚고 간다. 비위가 약한 분들은 읽지 않아도 좋다. 푸세식은 말 그대로 땅에 독을 묻거나 커다란 똥통을 구축한 후 위에다 간살대(11字 形態)를 놓고 사람이 쪼그리고 앉아 힘을 주는 방식이다. 똥을 누면서 아래를 보면 고약한 냄새만큼이나 불결한 인간의 배설물이 가득하였다. 더러 구더기도 우글거렸다. 구더기끼리 흡사 대대와 연대를 결성하여 전쟁을 벌이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곳은 정말 내려다보기 싫었지만 똥을 누기 위해선 어쩔 수가 없었다. 쥐 발자국도 보이고, 거미줄도 보이던 뒷간 화장실….
 
어떨 땐 똥물이 튀어 오르기도 했다. 그럴 경우엔 똥 누는 법이 따로 있었다. 간살대에 앉아 힘을 주다가 커다란 똥자루가 괄약근을 뚫고 오이 길이만큼 늘어지다가 똥끝에서 싹둑 잘라질 절호의 찰나에 앞으로 한 발짝 폴짝 나갔다가 '퐁당∼' 소리를 확인한 후 원위치 하면 되는 것이다. 처음엔 어려운 동작이지만 숙련되면 사뿐히 취할 수 있는 동작이다.

 

그러나 푸세식 뒷간의 추억도 다시 경험하기 힘들게 되었다. 사람이  얼마나 간사한지 산간오지에 가서도 똥이 마려우면 차로 10분 이상 달려 동사무소나 파출소 좌변기 화장실을 이용하니 말이다. 옛날 방식 화장실엔 돈을 준대도 못 들어가겠다. 눈으로 보면 며칠 간 밥을 못 먹을 것 같아서 말이다.

 

교과서엔 안 나오지만 일제시대만 해도 대부분의 시골에선 짚이나 새끼줄로 밑을 처리했다고 한다. 책의 제목을 몰라 표기를 못할 뿐이지 꽤 권위 있는 출판사의 저서를 통해 읽은 내용이다. 사실 우리 어렸을 적만 해도 신문지나 <선데이 서울> 같은 책자를 네모 반듯하게 오려 뒷간 못 걸이에 꽂아놓고 썼다. 아예 책 한 권을 갖다 놓고 읽으면서 몇 장씩 뜯어 사용할 때도 있었다. 그마저 여의치 않을 땐 '영남화학'이나 '호남비료' 종이 포대 속지를 찢어 쓰기도 했다. '한일시멘트' 포대 종이도 밑 닦기로는 없어서 못 쓸 지경이었다. 그게 불과 얼마 전인가? 산에서 칡뿌리 캐다가 똥 마려워 한바탕 퍼 지르고 망개 잎으로 밑 닦다가 구멍 뚫리는 바람에 손끝에 똥 묻히고 살던 그 날이….

 

뒷간에 앉아 똥 누면서 읽던 <선데이 서울> 연예 기사는 왜 그리도 머리에 쏙쏙 박히던지…. 그리하여 지금도 나훈아·김지미 부부가 결혼 후 대전에서 7년을 살다가 이혼했다는 사실만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책자 <똥의 재발견>에선 여성의 하이힐 뒷굽이 높아진 유래로 길바닥에 널린 똥을 꼽기도 하였다. 중세에 반듯이 지어진 유럽의 고성(古城)이 똥 문제로 심각했다는 일화는 생각할수록 아이러니 하다. 

 

얼마 전, 어느 글에 독일의 저명한 과학자가 밝혔다는 내용이 생각나 이곳에 옮긴다. 대변을 본 후 물을 내릴 때, 뚜껑을 닫지 않고 내릴 경우 내려오는 물과 고여있는 물이 충돌을 일으켜 미세한 입자들이 밖으로 틔어 오르는데 이때 대변에 있는 100가지 넘는 세균들이 공중으로 분산되어 안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문명이 발달하면 상대적으로 인간의 면역력이 떨어지는 것일까? 방귀소리만 들어도 숨이 멎는 질병이 발발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

 

한번쯤 뒷간에 앉아 두 눈 꼬나 뜨고 105mm 탄두를 장전하듯 괴력을 품던 날을 회상해봄이 어떨까? 내면의 기(氣)를 충전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뒷간 얘기가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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