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아아, 이상열...

펜과잉크 2007. 4. 3. 13:07

 

80년대 초,

난 별 볼 일 없는 몸으로

-공부 잘하는 몸도, 운동 잘하는 몸도, 부잣집 몸도 아니었다-

단지 말 잘 듣고 건강한 충청도 출신이란 이유로

'대한민국 제703특공대'로 차출되어 가서

참 여러 고비 넘겨 가면서 그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몸부림쳤다.

 

특공대로 차출될 당시

입대 동기가 여섯명이었는데

그 중 세명이 고향 부여 출신으로 조성욱, 이상열이란 이름이었다.

성욱이는 아버님이 대한체육회 간부로 재직중이셨고,

매형이 육군 모 부대장이어서 중대 행정병으로 편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난 160 주특기로 매 훈련에 참가하였고,

이상열 또한 똑같이 훈련에 참여하였다.

 

우리 셋은 특공대에 가서도

같은 2대대 6중대로 편성되어 미시령 입구 막사에서 함께 생활했다.

우연치고는 특이한 경우였다. 

 

상열이는 고향 출신이란 점 말고도

나와 고등학교 동창이라 무척 가까이 지냈다.

그는 학창시절 축구를 잘하여

교내 체육대회 같은 시합이 있을 경우엔 언제나 두각을 나타냈다.

그런데

군 생활은 좀 달랐다.

운동장을 누비고 다니던 그가 훈련엔 무척 소극적이었다.

매사 겁 먹은 눈빛이었고,

두려움에 질린 표정이 역력했다.

 

결국 그는

훈련중 다리를 심하게 다쳐 원주통합병원으로 후송되었다.

3개월 가량 지났을 때 복귀하였으나

무슨 훈련인가에 나갔다가 두번째로 다리가 부러져 아예 다른 부대로 전출이 나버렸다.

 

내 한 몸 추스르기도 힘겨웠던지라

고향의 전우가 떠나는 길도 배웅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영영 우리는 소식을 모르고 살았다.

그러나

가끔 군 생활을 떠올릴 때마다

내 뇌리엔 상열이에 대한 그리움이 함께 증폭되었다.

'어디에 살까?'

 

오늘,

출근 직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직원이 바꿔줘서 받았더니

대뜸

'종호야, 나 이상열이야.'

한다.

난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아 뜸을 들이며

'이상열이라니요?'

했다.

다시 그가

'나 상열이야. 옛날에 703특공대 같이 갔던 이상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으악!'

소리를 질렀다.

'내 전우 이상열? 이게 얼마만인가? 응? 정말 이상열이야?'

'응.'

그는 목이 메이는 어투였다.

'종호, 난 자네가 거기서 죽은 줄 알았어. 그런데 어제 TV를 보다가 자네가 나오는 걸 봤어. 시인 됐다면서? 동작동 국립묘지 가는 것도 보고, 다 봤어...'

아마 녹화 방송을 시청한 것 같았다.

방영된지 제법 지난 프로그램이었으니 말이다.

 

'그래. 어디 살아?'

내가 물었다.

'나 인천 살아. 부평 산곡동 현대아파트...'

'......'

난 잠시 말을 잃었다.

부평 산곡동이면 내 집이 있는 주안에서 10분 남짓 걸리는 거리 밖엔 안되는 곳이다.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꼭 만날 것을 약속했다.

고향 출신이자 고등학교 동창으로 이 나라의 특공대원이 되어 산악을 누비던 시절,

부상을 당해 의기소침해 있던 그의 모습이 뇌리에 또렷이 펼쳐진다.

 

잠시 후,

서울의 성욱이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알렸다.

성욱이는 탄식을 연발하며

'그래. 세상에 그런 일이 있었구나. 곧 너희들이 만나겠구나. 나도 만나자.'

한다.

 

상열이가 다리를 절뚝이며 전출을 떠난 게 1984년 4월경이던가?

당시 난 훈련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는 그를 원망도 했었다.

그러나 어쨌든

24년 세월이 흘러 우린 다시 만났다.

만나면 어떤 대화가 오갈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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