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수초교 상급생 시절, 수업이 끝나 정수터 한복진이네로 놀러간 기억이 난다. 한복진이 아니고 서달원이네 집이었던가? 기억이 흐릿하다. 다만 내지리 못 간 곳에서 왼쪽 산길로 고개를 넘은 기억이 난다. 정수터는 생각보다 큰 동네였다. 한복진은 훗날 개명한 이름이고 원래는 한대복이었다.
정수터에서 고향 마을로 가려면 개울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정수터 마을을 막 벗어나려면 고택 기와집이 있었는데 이 집이 바로 정중호 선배님 집이었다. 우리 어렸을 적만 해도 그 집 할머니가 울안을 오가셨다.
그 집을 지나면 인가가 뜸했는데 하필 상여집이 떠억 버티고 있어 대낮에도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상여집을 지나칠 때면 뒤에서 귀신이 '야!'하고 부를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건대 정수터 학생들은 학교 다니기가 좀 힘들었으리라. 정수터에서 비드재로 가는 길이 질퍽거리는 토질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 기억으로는 비드재쪽으로 해서 통학을 하기보다는 아까 우리가 넘은 내지리쪽 산길이 훨씬 용이하지 않았을까 추측이 된다.
서달원은 배구와 육상에 탁월했고, 친척지간인 서재원은 육상쪽에 두각을 나타냈다. 원래 서재원은 1968년 우리와 함께 합수초교에 입학했다가 1개월 가량 다니다가 그만 두고 이듬해 다시 입학하여 우리 1년 후배가 되었다. 동똘 살았던 창국이도 같은 입장이다.
초등학교 때 서재원이랑 학교 옆 제방에서 싸움이 붙었는데 그만 싸우기로 하고 뒤돌아서는 찰나 재원이가 돌멩이로 뒤통수를 찍어 반 죽는 줄 알았다. 개구리 뻗듯 뻗었다가 정신을 차리니 재원이가 100미터는 도망가 있는 것이었다. 어찌나 화가 나던지 주먹만한 돌멩이를 주워 갖고 쫓아가다가 재원이 뜀박질에 그만 포기를 하고 소리만 질렀다.
"너 이눔의 시끼, 내일 학교에만 와 봐. 반 쥑일테니께..."
그랬는데 이튿날 재원이가 할아버지를 모시고 등교를 하는 바람에 재원이 할아버지한테 나만 엄청 혼났다.
30세 쯤, 우연히 은산에서 재원이를 만났는데 느닷없이 거수 경례를 해서 '너 혹시 군인이냐?'하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재원이가 인사하며 그랬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깠!"
다들 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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