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고향 생각

[스크랩] 봄바람

펜과잉크 2007. 5. 18. 20:58
 



창 밖을 보니 은수원사시나무 군락(群落)에 바람이 부른데 바람이 어떻게 부느냐 하면 동서남북 지향점이 없이 지그재그 내지 갈지(之) 자로 부는 것 같다. 저 바람 속에 서 있어도 봄의 향기를 호흡할 수 있겠지? 고향의 언덕길을 걸으며 상큼한 봄바람에 불알 밑이 시원해지던 기억이 난다. 잿더미 퍼내느라 지게 지고 절골 고개 넘어가던 그 날….


불알 얘기가 나와 조금 멈췄다 가자면, 에, 불알은 ‘80 먹은 노인네도 불알 탐(貪)을 한다’는 부위이다. 인간 본성을 자극하는 신체의 가장 중요한 부위 중 하나다.


작년에 고향집에 갔더니 마침 아우가 하나 와 있었는데, 밤이면 낚싯대를 들고 어디론가 사라져 가는 곳을 물으니 병목안 저수지라는 것이다. 그 저수지 둑 끄트머리 경옥이네 산아래 어둔 곳에 터를 잡으면 팔뚝만한 고기를 건질 수 있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이튿날 나는 아우가 잡아 왔다는 어른 팔뚝만한 고기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특별한 경우에 해당되는 사례이고 어지간해선 큰 고기를 건질 수 없는 곳이 병목안 저수지이기도 하다.


고향 얘기가 나와 한 가지 짚고 갈 게 있다. 항간엔 혹시 홍주가 얼마 전 이곳에 올린 사진 중 병목안 정자나무 아래서 찍은 사진을 보신 분이 있을 것이다. 그 사진을 설명하는 글에서 홍주는 ‘정자나무 밑이 시원하다’는 뉘앙스의 글을 올렸던 기억이 난다. 바로 그 정자나무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과거 병목안 저수지를 지나 정자나무로 향하는 오르막길을 오르노라면 왼쪽에 선 커다란 정자나무 맞은편 봉분 위로 밑둥이 거대한 노령의 참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그 나무는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초반에 병목안으로 진입하는 한길을 넓히면서 잘려져 나갔다. 가중리 이익종 어르신이 팔순 기념으로 출간한 자서전을 읽다 보면 그 분이 6. 25 전란 중에 가족들을 데리고 피난을 와서 바로 그 참나무 밑에서 수개월을 살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아무튼 지금 현재 병목안 초입 노령의 정자나무 밑에 있으면 한여름에서 온 몸이 써늘할 정도의 기운이 느껴진다. 참 희한한 나무다. 내 생각엔 나무도 나무려니와 지대가 높고 전방이 탁 트여 바람이 맞바람으로 불어오는 결과로 추정이 된다. 내 말이 사실인지의 여부를 확인하려면 여름에 고향으로 휴가를 가서 이 나무 밑에 앉아 있으면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예로, 고향집 아버지께선 여름에 저녁 식사를 하시면 으레 오토바이를 몰고 이 나무 밑으로 가셔서 삼경 가까이 머물다 오신다고 한다. 그 얘기를 몇 번이나 듣고 예사롭게 지나쳤던 나는 한 번 뙤얕볕 속을 걸어 할아버지(할머니) 산소에 다녀오다가 이 나무 그늘 아래 앉게 되었다. 한낮이라 모든 게 풀이 죽어 축 늘어진 판임에도 그 곳만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 산길 걷느라 흘린 땀들을 순식간에 날려 버리는 것이었다.


가령 여름철에 근처 밭두둑을 매다가 이 그늘 아래 누워 있으면 세상의 근심이 사라질 지도 모를 거란 생각이 든다. 온 몸에 기운을 북돋아주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짧은 동안만이라도 속세의 시름들을 털어 내는 상상을 그려본다. 아아, 그 순간 거기 있는 사람은 또한 행복하지 않겠는가.


문득 학교에서 돌아와 외양간 소를 끌러 음지골이나 욕골 언덕으로 풀 뜯기러 가던 추억들이 떠오른다. 음지골 고랑에 풀어놓으면 연한 찔레나 억새를 잘도 뜯어먹었다. 가끔 준구네 감자밭고랑의 하지감자순도 덥석 감아 단숨에 삼켜먹던 소였다.


소 뜯기며 멀리 길 가던 내 또래 여학생을 바라보던 고향의 유월이 생각난다. 다시 갈 수 있을까?




출처 : 내지리 시내버스
글쓴이 : 류삿갓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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