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어머니

펜과잉크 2007. 11. 3. 20:13

 

 

 

오늘 성남시 중원구 사시는 둘째 외삼촌댁에 결혼식이 있다 하여 가족들과 함께 집을 나섰다. 차를 타고 가다가 전화를 걸으니 결혼식이 오후 한 시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후 세 시로 잘못 들은 내 착오가 문제였다. 이미 두 시가 넘어 있었다. 할 수 없이 외삼촌댁에 들러 인사 드리고 고향에서 올라오신 어머니를 인천 집으로 모셔올 양으로 다시 전화 드리니 예식장 근처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곧바로 고향행 버스를 타셨다는 것이다. 외삼촌과 외숙모만 뵙고 올 수 밖에 없었다.

 

오늘과 내일 어머니를 우리 집에 모셔 맛있는 것도 사 드리고 가까운 바다로 나가 함께 바람이라도 쐬면 참 좋을텐데... 언제 또 기회가 오겠지. 머지않아 또 무슨 경사로 수도권으로 오실 일이 있을 것이다. 아니면 언제 내려가 부모님께 외식을 시켜 드리던가 해야겠다.

 

며칠 전, 고향집으로 전화를 걸어 어머니께 다음과 같이 여쭈었다.

"밤 수확도 끝나고, 벼바심도 끝났으니 한가하시겠어요?"

어머니는 내 말이 끝나기가 바쁘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요즘은 콩 타작하느라 정신 없다아. 우리콩 끝나고 아래 지용이네 꺼 해준다. 늙은이들끼리 콩 타작도 품앗이로 헌다아."

콩이 얼마나 많길래 품앗이까지 하면서 타작을 하나 싶을지 몰라도 화물차로 콩대궁다발을 실어다가 부려놓고 하루종일 기계로 털어내는 작업이다. 콩 수확도 상당하다고 들었다.

 

재작년의 일이다. 아내 친구의 남편이 관교동에서 잡곡 도매업을 하는데 그는 내 고향집 부모님이 수확하시는 쌀, 밤, 콩 같은 것들을 직거래로 사다가 소매로 처분하여 짭잘한 이득을 보는 중이다. 그래 매년 내 고향집으로 가서 트럭 짐받이 가득 잡곡을 실어오곤 한다. 나중엔 우리집 잡곡뿐 아니라 이웃집 것까지 도맡았다.

 

한번은 콩을 거래하게 되었는데 이 사람이 인천에 올라온 뒤 아내에게 전화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다.

"저기... 지석이 할머니한테 전화 왔는데요. 제가 콩값을 잘못 계산했다고 다시 계산해서 추가금을 보내라 하시는데 사실 좀 섭섭합니다. 저는 평소 계산하는 직업이라 정확한 값을 드린 건데 뭔 계산이 틀리다는 건지..."

시골 노인네가 억지라도 부리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그 말을 듣고 난 어머니보다 그 사람 계산이 틀렸을 것이라 믿었다. 왜냐하면 고향집 어머니 연세가 올해로 칠십셋이신데 요즘도 가계부와 메모 형식의 일기를 쓰시는 걸 나는 기억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우리 어렸을 적부터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 전부 메모를 해두셨다. 하다못해 요즘도 자식들이 고향 가서 드리는 용돈까지 꼼꼼이 기록하시는 걸로 안다.

 

나는 아내에게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어머니 계산이 틀릴 수도 있지. 하지만 내 입장은 그 분이 틀렸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해."

며칠 후, 과연 아내 친구의 남편으로부터 자신이 잘못 계산하였고 부족한 금액을 송금해드렸다는 답변이 왔다.

 

어머니도 연세가 드신 탓인지 생전 굽지 않을 것 같던 허리가 조금 휘어보인다. 앞으로 인천까지 오시어 장남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실 날이 얼마나 될까? 농부의 아내로 평생을 논두렁 밭두렁에서 살아오신 어머니... 어머니 생각에 잠시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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