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스크랩] 삼경 단상

펜과잉크 2007. 11. 6. 23:58

 

 

낮에 통화를 하다가 김원일의 <전갈>을 물어 읽었노라 대답해놓고 줄거리가 떠오르지 않아 잠시 혼란스러웠다. 그 책이 나온 게 제법 된 걸로 안다. 왜냐하면 봄에 구월동 신세계백화점에 갔다가 '영풍문고'에 꽂혀있는 걸 샀으니 말이다. 엄격히 말하면 <전갈>은 '실천문학' 지면에 연재되었던 작품이다. 그 책이 단행본으로 묶여 나온 셈이다.

 

그런데 그 책이 지금 집에 없다. 어느 귀신이 또 집어간 게 분명하다. 나는 책을 잃어버리면 가져간 사람의 비양심 때문에 소화가 안된다. 그렇다고 책을 좋아한다 하여 비약시켜 호평하는 건 금물이다. 단순히 책을 즐겨 읽는다는 뜻이지, 책을 읽어 보통인보다 지혜롭다는 게 아니다. 사실 책을 통해 얻기도 하지만, 세상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벌어지는 점도 경계할 부분이다. 왜냐하면 세상이 책에서처럼 순리적이지 않고 뒤죽박죽 갈팡질팡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충돌하게 되는 것이다. 

 

예로부터 '창작과비평'이나 '실천문학사' 같은 데에선 상당히 수준 높은 책들을 펴냈다. 그리하여 두 출판사에서 펴낸 책들은 한번도 돈 아깝다는 생각이 안 든다. 저자를 섭외하는 것부터 책을 펴내기까지 상당한 노력이 엿보인다. 사실 편한 걸 좋아하는 요즘 세태는 활자 크기나 배열 같은 것에 따라서도 판매 격차를 보인다고 한다. 행간 간격과 활자 배열까지도 세심히 고려하는 출판사들이 적지 않게 되었다. 사실 과거 이문구 님의 <海壁>을 묶어 펴냈던 창비(創作과批評) 신서를 보면 책 한 장 넘기기가 왜 그리 지루하던지... 활자가 깨알 같아 읽다가 놓치는 예도 없지 않았다.

 

지명을 목전에 둔 사람과 통화를 하다가 '버리는 문제'에 대해 얘기 나눈 적이 있다. 버린다는 측면보다는 마음을 비운다는 설명이 역설적이리라 믿는다. 뭐냐 하면 나이를 먹으면서 쓸데 없는 욕심을 비우자는 것이다. 인간의 대표적인 속성인 물욕에 대해서도 마음 비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여기서 다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를 언급하게 되는데 그가 한 번은 마을에 갔다가 어느 부인으로부터 신발 털이개를 얻게 될 기회를 맞았다.

 

하지만 그는 부인의 제의를 뿌리치고 빈 손으로 돌아왔다고 술회한다. 신발털이개를 집에 들여놓으면 들여 놓는 순간부터 일거리를 만든다는 것이다. 하긴 단순한 내 판단에도 한낱 귀찮은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수시로 밖으로 들고 나가 흙먼지를 털어내야 하니까 말이다. 그는 또 저택을 꿈꾸는 인간의 허황에 대하여 지적하였는 바, 집 짓느라 빌린 빚 갚기에 쫓기듯 살아가는 사람들의 무지에 대해 꼬집기도 했다. 그러면서 정작 깨끗한 곳은 먼지로 가득한 인간의 집이 아니라 아무 것도 없는 풀밭이라는 것이다.

 

김원일의 <전갈>에 대한 흐린 기억을 되살리며 최근 읽은 문학서적들을 떠올려본다. 가을은 생각을 깊게 하는 계절이다.

 

 

 

 

출처 : 내지리 시내버스
글쓴이 : 류종호 원글보기
메모 : 김원일, 전갈,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버리고 떠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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