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고향 생각

메밀꽃 필 무렵

펜과잉크 2008. 9. 8. 10:45

 

 

 

학익동에 '메밀꽃 필 무렵'이란 식당이 있습니다. 고택의 기와집을 개량한 업소인데 뒤꼍의 시누대와 호도나무 그늘이 옛집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암시하는 바와 같이 이 집의 주메뉴는 메밀냉면입니다. 올여름 직원을 따라 처음 갔다가 줄곧 단골로 가게 됐어요. 사실 저는 냉면을 좋아한 게 불과 2-3년 전입니다. 고향으로 휴가 가서 아버지 모시고 읍내 식당에 갔다가 그 집 일미가 냉면이라기에 처음 먹어보고 맛을 알았습니다. 그래 요즘도 고향집에 가면 그 식당에 들립니다. 제 입맛에 맞는 식당이라기보다 냉면을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위해서입니다. 아버지께선 냉면을 참 좋아하십니다. 저희보다도 식욕이 훨씬 좋으세요.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단숨에 후루룩 잡수십니다.  

 

'메밀꽃 필 무렵'에서 냉면을 먹을 때마다 고향집 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아버지께서 단골로 다니시는 읍내 '우리식당' 냉면보다 맛이 더 좋기 때문입니다. 육수부터 입맛을 끌어당기는 '메밀꽃 필 무렵'입니다. 아버지께서 그 집 메밀냉면을 잡수시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생각하니 입에 넣는 냉면이 맛있지 만은 않더군요. 그러면서 아버지는 이 순간 산에 계실까, 밭에 계실까, 논에 계실까, 사거리 다방에 계실까... 잡념이 난무하는 것입니다.

 

어려서 아버지 따라 이웃마을 큰집으로 밤마실을 가곤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말렸지만 아버지 따라 큰집 가는 게 왠지 좋았어요. 하지만 저는 곧 잠이 들었습니다. 어른들 말씀하시는 곁에 있다가 저도 모르게 잠들어버리곤 했지요.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저를 업고 집으로 오셨습니다. 아직도 저는 어릴 적 아버지 등에 업혀 집으로 향하던 순간들을 잊지 못해요. 그윽한 체취까지도 말입니다. 아버지는 중도에 어린 몸을 추스러 업으셨는데 팔에 바짝 힘을 주실 때마다 허벅지 통증에 잠이 깨었습니다. 아버지는 낮은 음성으로 노래하셨습니다. 마음은 부모님을 인천으로 모셔서 학익동 집 냉면을 사 드리고 싶은데 마음대로 될런지 모르겠어요. 문득 땡감이 '탕탕' 떨어지던 함석지붕 아래서 아버지, 어머니, 누나, 나, 아우들 모두 모여 살던 날들이 꿈결처럼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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