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서해안고속도로엔 비바람이 몰아쳤다. 강풍을 동반한 비는 차창에 흩날리며 처절히 울부짖었다. 더러 차체가 흔들렸다. 서해대교를 건널 땐 긴장이 더했다.
광천 I.C에서 청양으로 향하는 길은 한적하다. 거기서부턴 왠지 고향 같은 친근함이 앞선다. 저녁 불빛들이 그렇다. 지붕 낮은 집들의 창에서 새어나오는 불빛들과 간간이 서있는 방범등이 고향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길을 가노라면 무단 횡단하는 너구리도 만난다. 어제도 세 번이나 차 앞을 가로지르는 것이었다. 고향집을 나서면서 절골 저수지둑에서 만난 상황까지 합쳐서 그렇다.
청양에 이르러 경찰서 앞에서 직진하지 않고 좌회전 신호를 받아 읍내로 핸들을 틀었다. 이윽고 지척의 청양시외버스터미널 앞에 차를 세웠다. 창을 반쯤 내리고 건너편 버스터미널을 바라보았다. 작년 시제 때 아버지가 서 계시던 입구를 말이다. 보슬비는 내리고, 어둠 속에서 아버지가 손을 흔드실 것만 같았다.
작년 말,
예년과 다름없이 청양군 대치면 금전리 선산에서 시제를 지냈다. 시제 후 친척들과 헤어져 아버지를 모시고 아들과 셋이 청양으로 향했다. 2-3킬로만 달리면 읍내였다. 청양은 부여나 예산보다 작았지만 눈 씻고 봐도 공장 굴뚝같은 혐오시설이 없는 그야말로 청정지역이다. 읍내 풍경도 그림 같다. 위생적이면서 맛좋은 식당들도 여러 곳이다. 나는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한우국밥이나 설렁탕, 혹은 열무냉면을 파는 식당을 알고 있었다.
차가 읍내로 진입할 즈음 갑자기 엔진소리가 불안해지면서 체크램프가 떴다. 일순 아차 싶었다. 엑셀레이더를 밟아도 추진력이 오르지 않으면서 덜덜거렸다. 일단 차부터 수리해야 할 형편이었다. 그래 정비소를 찾기 시작했다. 한데 일요일이나 문을 연 곳이 없었다. 삼십 분 넘게 고민하던 끝에 결국 아버지를 터미널로 모시기로 했다. 부여 가는 버스가 흔했고, 평소 아버지께서 자주 오시는 곳이라 걱정이 없었다. 나는 아버지께 현재 사정과 함께 조만간 다시 찾아뵐 것이며 그때 맛있는 음식을 사 드리겠노라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예의 여유 있는 표정으로 ‘그려. 그려’만 연발하셨다. 곧 혼잡한 터미널 맞은편에 차를 세우고 아버지께 인사드렸다. 아버지가 터미널로 가실 때까지 차에서 내려 지켜보았다. 아버지는 길을 건너 곧장 대합실로 향하지 않고 출발 대기중인 시외버스 운전수에게 다가갔다. 아마도 배차시간을 확인하시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내 눈에 포착된 건 운전수의 태도였다. 팔순을 바라보는 노인의 질문에 선글라스를 쓴 운전수는 끄떡없이 ‘똥폼’ 자세로 앞만 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운전수는 5.16 혁명 당시 박정희 장군 같은 폼이었다. 서울 진입 후 ‘차지털’을 옆세우고 찍은 사진 속의 폼 말이다. 그 오만함이라니…….
버스 운전수가 그냥 서있자 아버지는 힘없이 돌아서 버스 대합실로 향하셨다. 순간, 그 모습이 왜 그리 측은하고 불쌍하던지……. 덧없이 쓸쓸해보였다. 운전수에 대한 원망과 함께 눈물이 왈칵 솟았다. 나는 어린 아들에게 차를 지키라 하고 도로를 횡단 하여 터미널로 진입했다. 운전수 앞을 지나며 ‘어른이 물으면 대답해야 할 것 아냐’ 소리치곤 대합실 안으로 들어갔다. 버스시간표 패널 앞에 계신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
“엇, 출발 안했니?”
“표를 끊어 드리려구요.”
“괜찮다. 아버지가 끊으면 되지.”
“아니에요.”
대합실 창구에서 부여행 버스표를 받아 아버지께 드렸다. 그리곤 마저 안내해드리고 인천으로 올라왔다. 차는 약간의 수리비로 제 기능을 되찾았다.
훗날 생각하니 그날 모습이 건강하신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셨다. 그 생각에 미칠 때마다 아버지를 배웅해드린 청양버스터미널이 떠오르고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이 밀려오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한우국밥 한 그릇 사 드리지 못한 게 왜 이리도 후회스러운지 모르겠다.
어젯밤,
고향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를 모시고 다시 인천으로 향했다. 23일 날 연수동 힘찬병원 진료 예약이 있어서다. 밤길을 달리면서 어머니는 아버지에 관해 끝없이 말씀해주셨다. 나는 청양을 지나면서 갈 때처럼 읍내 터미널로 핸들을 돌렸다. 버스터미널을 천천히 지나면서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작년 시제 때 저기서 아버지를 배웅해드렸어요.”
어머니는 잠시 말씀을 거두시고 내가 가리키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셨다. 막차인지 버스 두 대가 대기 중이었다. 빗발은 는개로 바뀌어 깊어가는 터미널의 밤을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들었다. 는개 속 저만치서 아버지가 손을 흔드시는 환상이 일며 나는 소리 없이 눈물을 닦았다.
비에 젖은 청양버스터미널(original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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