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현관에 들어서니 막내아들이 방문을 열며 인사하는데 뭔가 어색하다. ‘친구가 왔어요’ 말하는 표정에 당황스런 빛이 역력하다. 친구들이 끊이지 않는 걸 아는데 새삼스레 친구 왔다고 강조할 게 무엇인가. 그래 방안을 보니 문 뒤에 여학생 하나가 서 있다.
“네가 J니? 지석이한테 얘기 들었다.”
그제야 앞으로 나서면서 인사 한다.
“우리 집에 오면 인사는 꼭 하고 그 다음부턴 마냥 편하게 놀아라.”
재차 표정이 밝아지는 것이었다.
J 부모는 행적직에 근무한다고 들었다. 나는 공무원 자녀들이 좋다. 왜냐하면 공무원 부모 밑에서 교육 받은 아이의 가치관은 일반 가정 아이들보다 뒤지지 않을 거란 확신이 선다. 아마 이 글을 공무원이 읽으면 공감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공무원이 출근해서 하루 한 번 이상 듣는 소리가 청렴 혹은 검소, 부조리 내지 부적절한 처신에 관한 부분이다. 내 업무수첩을 들추면 연일 자체사고 예방을 위한 교육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바, 세부항목으로 ‘음주운전 금지’ ‘금품수수 금지’ ‘도박 및 불건전 대인관계 금지’ ‘과다채무 금지’ 등이 빠지지 않는다. 21년 전 업무수첩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항간에 공무원을 ‘골 따분한 사람’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냉정히 말하면 한국 사회에서 ‘골 따분한 사람’ 이미지를 갖지 않고선 공무원 직무를 수행하기 어렵다. 매사 규칙적이고 규정적이고 교본에 입각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민원부서에서 20년 이상 버텼다면 그의 인간적 자질을 인정해줄 만하다. 간혹 타성에 젖은 나태 일관주의자들이 문제이긴 하지만….
물론 반복교양으로 세뇌 당하다시피 해도 부조리를 저지르는 공무원은 있기 마련이다. 이는 자본의 원리가 도덕성이나 윤리적 가치를 뛰어넘는 사회구조적 모순에 결함이 있다는 주장을 펴고 싶다. 서울 강남 공무원과 경북 의성군 공무원 급여가 동일하다는 자체가 모순이다. 생활 환경이 천양지간 아닌가?
말이 길어졌는데, 막내아들에게 냉장고 과일이라도 깎으라고 일러줬다. 그러면서 불안하지 않도록 방문을 닫아 주었다. 방안에 둘이 있다고 불미스런 일이 생길 거란 의심은 잘못된 거다. 둘이 있어 더욱 각별한 정이 싹틀 수 있다고 생각하면 쉽지 않을까? 굳이 이상한 쪽으로 변질시킬 필요가 없다. 솔직히 나의 경우 일찍부터 이성과 교제하였는바, 최초 편지를 주고받은 게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그러고 나서 그녀와 오랜 세월 동안 변치 않았다. 피차 다른 쪽엔 관심이 없었다.
내게 친구가 제일 많았던 때가 고등학교 2-3학년 때였다. 이틀이 멀다 하고 친구들이 찾아왔다. 사랑채 공부방이 온통 친구들로 북적였다. 그럼에도 부모님은 한 번도 친구들 때문에 공부에 지장 있다는 말씀을 하시지 않았다. 한 번은 눈이 푹푹 내리는 날, 친구들이 왔는데 마침 쌀이 떨어져 아버지께서 벼를 지고 이웃마을 방앗간까지 나가 쌀을 찧어다가 밥을 해주셨다. 눈이 쌓여 방앗간 경운기가 들어오지 못한 탓이다. 아버지는 아침 일찍 사랑채에 군불을 때어 냉골에 웅크린 우리들 몸을 덥혀 주셨다.
그때 친구들…. 그 친구들이 얼마 전 아버지 장례식 때 한 명도 빠짐없이 찾아왔다. 대전의 환교 친구는 이틀 동안 장례식장에서 밤을 새우다시피하며 손님맞이에 분주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옛 시절, 부친이 학교장이셨던 두현 친구는 사채업을 잘못 한 큰누님 탓에 쫄딱 망하여 궁핍의 나락에 몰락한 채 연명하는바, 장지까지 와서 끝까지 아버지 봉분을 정리해드리는 것이었다. 봉분에 떼를 입혀 삽으로 다독이는 모습을 보고 느낀 바가 크다. 친구는 다음과 같이 읊조렸을지도 모른다.
“종호 아버지, 지난날 고마웠어유. 지가 양식이 떨어져 곤란해 할 때 방앗간에 쌀 맡겨놓으시고 찾아가라 은밀히 전화 주신 적도 여러 번이었지유. 식구들이랑 잘 먹었습니다. 친구 아버지, 아니 아버지…. 많이 편찮으셨지유? 이제 부드러운 흙 속에서 편히 쉬셔유.”
그런 친구에겐 아까울 것이 없다. 일이 끝나 헤어질 때 도톰한 봉투를 건네주었다. 끝까지 받지 않으려 하여 다른 이유를 달았다.
“네게 주는 게 아니다. 네 딸에게 주는 거야. 만날 수 없으니 용돈 한 번을 못 주네. 꼭 전해 주렴.”
훗날,
나도 아버지처럼 아들과 아들의 친구들로부터 존경받는 몸이 되고 싶다. 녀석들에게 삼겹살도 사주고 자장면도 사주련다. 결코 눈치나 살피는 기회주의자로 키우고 싶지 않다. 떳떳하고 당당하게 컸으면 좋겠다. 연애도, 사랑도 멋지게 하면서 말이다. 아들의 청소년 시절이 아름다운 추억과 낭만으로 장식되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