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여수'를 들으며

펜과잉크 2010. 5. 12. 01:08

 

  

* 막대기 왼쪽 스피커 볼륨을 올릴 것!

하수영 - 여수

     

     

    - 1976년 중학교 3학년 때

     

 

 

어제 아침 일곱시,

휴대폰에 고향집 전화번호가 떠서 받으니  어머니다. 대뜸 '미역국 먹었니?'하셔서 기다렸다는 듯이 '예' 했다. 나는 식당에서 해장국을 먹고 있었다. 수저소리 안 나게 조심스레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해마다 맏이 생일을 잊지 않고 기억해주신다. 전화기 생기고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 어려서도 생일만은 꼭 챙겨주셨다. 아침 미역국 먹고 밭이나 논으로 일하러 내몰리는 상황이었지만 미역국 없이 생일을 맞은 날이 없다.

 

여기서 시골아이들의 농사 참여도에 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우리 어렸을 때 주말은 일하는 날이었다. 어린이날이 무슨 필요가 있나? 어린이 날도 일하는 날이다. 우리 마을은 담배를 심어 마당에까지 담배를 키울 정도로 미친 마을이었다. 표현이 어떨지 모르지만, 담배 1단에 3천포기를 정부에 신고했는데 우리집도 5단을 심었다. 5단이면 신고한 포기수만 1만5천포기다. 그런데 신고한 포기수대로 심는 집이 없었다. 우리집도 2만포기가 넘었을 것이다. 비닐 하우스 건조장만 7-8동을 가지고 있었으니... 아무튼 어려선 담배 고랑에 파묻혀 산 기억 밖에 없다. 폭염 속에 담뱃잎 따던 기억은 지금도 현기증을 동반한다. 낮에 따놓고 새벽까지 엮어 매단다.

 

사춘기에 이르러 사랑할 틈이 생기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학생이 생겼다. 그녀는 지금도 내 첫사랑이다. 서로 다른 사람과 결혼하여 살지만 한때는 참 많이 좋아했다. 우린 중학교 동창이다. 부친이 학문을 높이 깨우친 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녀의 집안은 그때가 최고 번성기였다. 아무튼 사랑을 시작하니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군대 가기 전까지 내 의식엔 그녀뿐이었다. 훗날 결혼하고 인천에 둥지를 틀었지만 첫사랑이란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한 해, 두 해... 십 년, 이십년... 삼십년 넘게 흘렀어도 여전히 그녀는 내 첫사랑이다.

 

아침에 당직을 끝내고 퇴근하여 집에 있으니 친구들한테서 축하 문자가 온다. 엄격히 말하면 인터넷으로 축하 쪽지를 보내온 사람, 휴대폰으로 축하 문자를 보내온 친구가 둘이다. 한 명은 박기명이고 한 명은 노코멘트...

 

 

 

    여 수 

                                    하수영


  이 골목 언저리였지 그 집이 있던 곳
  드물던 서구풍 차림 아담한 그 쌀롱
  애달픈 집시 음악에 가슴 녹이면서
  애달픈 사랑을 하던 청춘 그리운 그 날

  희미한 등 밑에 앉은 그녀는 고왔지
  말수도 적지만 정말 순하고 착했어
  마음은 사랑하면서 말로 내지 못해
  가슴만 혼자 태우던 청춘 그리운 그 날

 

 

 

첫사랑이 전화로 '생일 선물이야. 옛날에 내게 들려준 곡... 기억할거야. 하수영의 <여수>를 선물할게' 해서 들었다. 집 주소를 알면 보내주고 싶은 게 있다했지만 나는 얼른 말을 돌렸다. 몇 년 전 그녀를 대전에서 다시 만났을 때 내가 만년필을 애용하는 걸 알고 몽블랑 3구짜리 가죽 케이스를 사줘서 받았다.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내게 만년필은 필기구 이상의 의미가 있다. 가슴에 꽂고 다니며 하루에도 몇 번씩 확인한다. 잃어버린다는 건 상상도 못한다.

 

생일을 맞아 옛날 추억을 회상하며 한때 좋아했던 하수영 님의 <여수>를 반복해 듣는다. 앞으로도 나만의 가치관과 소신 잃지 말고 꿋꿋이 살겠다. 스스로 건강하자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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