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간다(류종호,midway soprano saxophone).mp3
봄날은 간다.
인터넷에 <봄날은 간다>로 검색하니 고(故) 백설희 선생님이 불렀고 훗날 최백호, 한영애 같은 분들이 재창했다. 충청도 출신의 장사익 씨도 불렀다. 가수마다 창법이 다르니 노래의 맛도 다르리라. 그런데 장사익 님의 민요조(調) 창법엔 한 마디 하고 싶다. 이 분은 대개 서정적인 가요를 골라 민요조로 각색해 부르는데 한결같이 '울부짖는 통한의 곡(哭)소리조'에 국한되어 있다. 이 분 음반을 몇 장 소장한 입장에서 음악을 들으면 답답함마저 느껴질 때가 있다. 후딱후딱 가도 될 부분을 한없이 늘어지니 숨이 막힐뿐... 장사익 님께 주문한다. 늘어지는 곡만 고집하지 말고 템포가 빠른 곡도 부르라는 것이다. 인생사, 만날 한탄할 거리만 있는 게 아니잖는가? 장사익 님께 <태평가>의 일절을 소개해드린다.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를 내어서 무엇하나
인생 일장춘몽인데
아니나 놀고서 무엇하랴
니나노 닐니리야 닐니리야
니나노 얼싸 좋아 얼씨구나 좋다 ------( 略
봄날은 간다
백설희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꽃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딸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내 연습실 근처에 '고려한방 삼계탕'이란 식당이 있다. 오래 전부터 거기 있었다. 삼계탕이 두 종류인데 하나는 한방 약재를 넣고 하나는 일반 삼계탕과 같다. 연습을 하다가 배가 고프면 혼자 들러 한그릇 뚝딱 먹곤 한다.
며칠 전,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식탁을 정하고 앉으니 앞 식탁에 50대 중후반쯤 된 남자와 그의 딸과 외손주로 보이는 셋이 삼계탕을 먹고 있었다. 50대 중후반의 남자 앞엔 2홉 소주 두 병이 있었는데 이미 빈병이었다. 소주 두 병을 혼자 마시고 취했는지 추리닝 바지를 무릎 위까지 둘둘 말아 올렸다. 좀 부대끼는 모습이었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외손주로 보이는 아이를 큰소리로 부르면서 제 안방에서 하듯이 어르고 달래는 쇼(?)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딸로 보이는 여자는 '우리 아들 예쁘죠? 좀 봐 주세요. 손님 여러분, 창경원 원숭이 좀 봐주세요' 식으로...
그들이 나가고 주인 여자가 식탁을 치우는데 턱 빠진 인간이 먹어도 그보다는 나을 것이다. 뼈를 고르라는 그릇을 두고 식탁 여기저기 뼈다귀를 늘어놓았는가 하면 쌀죽을 흘려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 딸의 밥그릇 근처도 마찬가지다. 아주머니가 식탁을 치우다 말고 남 들으라는 듯이 '손님들 식사하는 걸 봐도 다 격(格)이 있다' 하는 것이다. 순간 옳은 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돈 주고 사 먹는 음식이라도 매너와 에티켓이 있다. 이른바 대중식당에서 바지를 훌렁 걷어부치고 뭐하는 건지... 어디 산비탈 경운기 몰다가 왔나? 딸딸이 치는 거야?
잠시 후,
내 옆 식탁에 사십대 초반의 남녀가 앉았다. 주인아주머니가 식탁에 종이를 깔고 주문을 받는데 손님으로 앉은 여자가 묻는다.
'여기 삼계탕집 맞죠?'
아주머니가 대답하자 여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잇는다.
'너무 맛있을 거 같네요. 인터넷에 올릴게요.'
여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주머니가 고개를 수그린다. 그걸 보면서 대한민국에 병신 육갑이 여러 종류구나 싶었다. 식당 아주머니한테 하는 소리가 아니다. 그 분이야 의례적일 수 밖에... 사십대 초반 여자 손님을 빗대는 소리다. 무슨 그따위 졸렬한 방법으로 아양을 떠는가? 차라리 직설적으로 '잘 부탁합니다' 혹은 '먹고 맛있으면 나중에 다시 올게요' 하는 정도가 훨씬 인간적이다. 마주앉은 남자는 여자 덕에 팔자 편 놈처럼 내 쪽을 훔쳐보며 저희들 좀 봐 달라는 눈치인데, 그런 모습이 왠지 안쓰럽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날은 삼계탕 한 그릇으로 인생사 두 가지를 터득했다. 떠나온 자리 두고 욕 먹는 사람 되지 말자는 것과 사지 멀쩡해가지고 손바닥 비비지 말자는 것이다.
봄날은 간다. 연분홍 치마 휘날리며... 밤은 삼경을 지나 무아지경에 이른다. 꿈을 꾸듯 먼 고향 추억들이 영혼속을 흐른다. 밖은 깊은 어둠뿐! 가만히 손을 거둔다.
* 녹음 사양 및 기타
김기천표 midway 백동 1001 소프라노 색소폰 + 셀마 f 피스 + 라보즈 2 1/2 리드 + 엘프 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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