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스크랩] 인천문협 2010 대이작도 워크숍 후기

펜과잉크 2010. 6. 9. 00:17

 

 

후기가 늦었다. 마음은 여전히 대이작도에서의 일로 수놓아져 있다. 워크숍에 참석했던 회원들도 나와 마찬가지이리라. 섬의 그림같은 풍경들이 그려질 것으로 믿는다. 팬션이 섬의 중앙에 있어 어디로든 이동이 자유로웠고 동서 양편으로 수 분만 걸으면 바다와 닿았다.

 

6월 4일.

아침 7시 20분경 집을 출발하여 20분 정도 지난 끝에 연안부두에 닿았다. 전날 조영숙 사무국장과 구월동 농수산물시장에서 구입한 짐을 차에 싣고 한 시간 먼저 부두에 도착한 나는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이작도행 배표를 끊었다. 선박은 대부해운(주) 소속 대부카페리5호였다. 그 배는 차량을 실을 수 있는 적재공간이 매우 큰 화물겸용선이었다. 대신 여객 전용 쾌속선보다는 항해시간이 오래 걸리는 배였다. 연연부두에서 이작도까지 2시간 20분 정도 소요된 것 같다.

 

 

 평온한 아침의 연안부두

 

 

 

배가 출항하면서 나는 갑판 위로 나왔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아침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든다. 벌써부터 도시와 다르다는 게 확 느껴진다. 갑판으로 나온 사람들은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주면서 일종의 놀이문화를 느끼는 몸짓들이다.

 

 

 

 

 

인천대교를 지나 더 나아가니 무의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1990년대 중반 인천문협에서 당일치기로 무의도 워크숍을 다녀온 기억이 난다. 선착장에 내려 곧장 섬에서 가장 높은 산을 올랐는데 이름 모를 나무들로 가득해 여간 신기한 게 아니었다. 산을 내려가 바닷가에 모여 점심을 먹은 기억... 김영승 형님이 재래식 화장실을 다녀와 '변소에 갔더니 구더기가 우글거려 난감했다'고 하여 일부 여성회원들의 인상이 구겨진 기억이 난다.

 

 

 

 

 

 

 

 

 무의도

 

 

 

선미로 이동하여 연안부두를 바라보니 도시 전체가 사라지고 없다. 지금쯤 연안여객터미널엔 9시 정각에 출발하는 회원들이 하나 둘 모여들겠지?

 

선미에서 바라본 연안부두쪽

 

 

 

 

배가 한참을 순항하니 이번엔 자월도가 눈에 들어온다. 자월도는 작년도 인천문협 워크숍이 열렸던 섬이다. 기분이 새로웠다.

 

작년에도 나는 차량을 가져갔다. 하루 먼저 섬에 닿아 자월도해수욕장에다 숙영지를 구축했다. '숙영지 구축'이란 말은 군대용어인데 아무튼 차에 싣고 간 비박용 텐트를 잔디밭에 설치했다. 그날 밤, 낙뢰와 함께 비바람이 몰아쳐 몇 번이나 잠을 설쳤다. 파도소리는 왜 그리 사납던지... 맹수가 포효하는 것 같았다. 이튿날, 아침 거짓말처럼 고요했던 바다... 섬에 눈을 붙박고 바라보자 우리가 묵었던 오크밸리 팬션이 언덕 위에 그림처럼 솟아있다.

 

 

자월도

 

 

 

 

작년도 워크숍 숙소였던 오크밸리 팬션.

 

 

 

참고로, 대부해운(주) 소속 대부카페리5호는 자월도와 승봉도를 경유하여 대이작도에 닿는다. 최종 목적지는 덕적도. 덕적도는 재작년 인천문협 워크숍이 열린 섬이다. 메꽃으로 가득했던 해변과 서포리해수욕장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섬치고는 면사무소 소재지가 커보였던 기억이 난다. 육지 면소재지 규모에 전혀 손색 없었다. 6. 25전사를 기록한 책자엔 덕적도와 영흥도에서 끔찍한 살육이 자행됐다 한다. 섬 주민끼리 패를 나눠 충돌했던 것이다. 이런 비극의 살육전은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도 있었던바, 구룡령 기슭 갈천리에선 십 여호 남짓한 주민끼리 죽창으로 맞섰다는 기록이 있다. 심지어 사촌끼리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까지 했다.(1983년 육군사관학교 간행물 <장교의 반려> 착안)  중간 경유지에선 차와 사람이 번갈아 타고 내리는 절차가 끝나면 배가 즉시 출항한다.

 

 

 승봉도

 

 

 

연안부두를 출발한지 2시간 10분쯤 지났을 무렵, 배는 이작도항에 접근하고 있었다. 아래 사진은 대이작도로 접안하기 위해 서행하는 카페리호 갑판에서 건너편 소이작도를 찍은 것이다. 섬의 측면에서 찍어 규모가 작아 보일지 모르나 건물 뒷편 차도로 봐도 뒤쪽으로 지형이 한참 연장되었을 거란 상상이 인다.

 

 

소이작도

 

 

 

섬에 도착하자마자 조영숙 사무국장이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팬션 주인의 것이었다. 남자가 받아 외길을 따라 고개 넘어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면 100미터 전방 <사계절팬션>이란다. 처음 달리는 해변가 도로가 난이도 높은 섬 지형을 가늠케했다. 5분쯤 지나 팬션에 이르러 차에 실린 짐을 내렸다. 30분도 채 안되어 조영숙 사무국장이 전화로 회원들이 대이작도에 도착했단다. 급히 차를 몰고 가니 벌써 버스와 트럭 짐칸에 분승하고 팬션으로 출발할 태세다. 김윤식 회장님을 비롯한 회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팬션에 와서 짐을 푼 뒤 막간의 휴식...

 

점심 식사 전 팔각정과 전망대가 있는 산행을 하기로 했다. 버스가 고개마루까지 올라가 두 패로 나눠 한쪽은 부아정으로 향하고 우린 전망테크가 있는 언덕으로 올랐다.

 

 

부아정쪽에서 내려다본 전망테크 언덕. 저 앞의 섬이 승봉도. 오른쪽 고봉이 송이산이다.

 

 

전망테크 위 마루에서 휴식 중인 회원들. 왼쪽부터 최일화 강의중 신미자 한미령 이옥금 이연숙 신영옥 김순자 조영숙 김윤식(회장) 오명선 선생님, 필자

 

 

 

점심 식사를 하고 섬을 한바퀴 돌기로 했다. 차량은 팬션에서 제공한 20인승 버스과 소형 화물, 그리고 내 차였다. 화물차 짐짝에 타신 분들은 마치 도로보수공사에 동원된 주민자치센터 일용부들 같다. 먼저 이미자 님의 <섬마을 선생님>을 영화로 찍은 촬영지... 코딱지만한 교사에서 총 230여명의 졸업생이 배출됐단다.

 

문득 영화속의 주인공이 생각났다. 총각 선생님을 떠나보내는 섬처녀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배터 나무그루를 끌어안고 바다를 바라보며 사랑하는 '선생님'을 그리는 장면... 60-70년대의 섬은 충분히 그런 사연을 간직하고 남을 거란 추측이 일었다. 내 고향 친구 누나도 읍내 사는 선생님과 결혼했는데 학교 앞에 살면서 선생님을 하숙시킨 결과였다. 부모님 일 나간 틈에 둘이 뒷산 묘마당에서 통기타 몇 번 두들기고 해결하지 않았을까? 뭐 그런 상상...

 

 

<섬마을 선생님> 촬영지 옛 분교

 

 

 

기념비 앞에선 조영숙 사무국장, 이정길 최일화 선생님.   

 

 

 

영화 촬영지를 떠나 대이작도항으로 이동하여 팬션 주인이 호출한 배를 기다린다. 곧 흥남부두 피란민들이 탔을법한 동력선 한 척이 들어온다. 하지만 내 표현은 어디까지나 외형에 착안한 것이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섬을 둘러보기엔 안성마춤 배다.

 

 

오대양 육대주.... 오대양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대양호'

 

 

 

 뒤편 오른쪽이 소이작도, 왼편 바위 기슭이 대이작도로 '대양호' 기관실 뒤편으로 섬의 경계가 있다.

 

 

 뱃전의 이정길 선생님과 조영숙 사무국장. 

 

 

 

풀등해수욕장.

썰물 때 한시적으로 나타나는 백사장 해수욕장으로 평소엔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만조땐 없어지는 걸로 안다.  

 

 

 

 

 

배를 타고 닿은 풀등해수욕장이다. 해수욕장 한복판에 모여 찍었다.

 

 

 

김진초 선생님과 필자(박현자 선생님 사진)

 

 

풀등해수욕장을 출발하여 바다를 달리니 부아정쪽에서 내려다보던 작은 섬 하나가 손에 잡일 듯 가깝다. 서울 무슨 미용실 주인이 개인적으로 구입한 무인도로 섬지기 부부만 산단다. 확실한 얘기인지는 검증되지 않아 보증할 수 없음.

 

무인도. 외지 사람들이 해변에 모여있는 게 보였다. 사진엔 자세히 나오지 않았다.

 

 

 

 

 --- 2편에 계속

 

 

 

 

출처 : 인천문인협회
글쓴이 : 류종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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