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삶 중 휴대폰 문자로 인한 스트레스도 무시 못할 거란 주장이다. 인간의 시계(視界)가 수봉산 정상에서 인천 남구를 다 내려다보는 것 같아도 손바닥에 올려놓은 휴대폰조차 오타를 범하기 일쑤다. 화면을 보며 문자를 조립하기엔 자판이 보이지 않고, 자판만 보면서 문자를 생성시키기엔 화면이 궁금하다. 그러니까 한꺼번에 두 가지를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는 휴대폰 문자에 매우 회의적이다. 인간의 심보가 얼마나 사악한지 받을 땐 기분 좋은데 보낼 땐 조립하기조차 귀찮을 때가 있다. 문자 몇 자 보내주면 되는 걸 나중으로 미루다가 몇 시간 후딱 지나 상대방으로부터 감점을 당하기도 한다. 디지털 문화에 길들여진 인간의 정서는 간단한 휴대폰 문자를 놓고도 '씹는다'는 식으로 서운해한다. 그러니까 받으면 보내줘야 내 속도 편하다.
어제, 인천엔 비가 내렸다. 후덥지근하던 대기에 빗물이 듣자 뜻모를 설렘이 일었다. 가만히 창밖을 내다보다가 생각나는 분께 휴대폰 문자 한 줄 보내기로 했다. 그리하여 휴대폰 메뉴란 '검색어로찾기'에서 그 분 존함을 검색해냈다. 이어 '메시지 보내기' 창을 띄웠다. 막 문자를 조립하려는 찰나, 어디서 문자가 한 통 도착하는 것이었다. 확인 버튼을 누르니 친구 부친상에 못가는 선배가 나한테 대신 부의금 전달을 의뢰하는 문자였다. 하긴 나도 못가는 처지였다. 어차피 삼자에게 다시 부탁해야 할 처지였다. 나는 아까 그 분의 존재를 망각한 채 무의식적으로 문자를 조립했다.
'그래...요.'
전송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화면에 처음 검색했던 분의 존함이 뜨는 것이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문자가 날아간 후였다. 그저 이름 석자 알고 있는 분께서 뜬금없이 '그래...요' 문자를 받고 어떤 의문을 품을까? 고민 끝에 해명의 뜻을 담은 문자를 조립해 보냈지만 이미 활자의 신선함은 결여된 생태였다. 더구나 상대는 답변조차 없다. 상황이 그쯤되자 앞으로는 절대 문자를 보내지 말아야겠다는 계산에 이르렀다.
휴대폰 문자에 관한 글을 쓰다 보니 이웃나라 중국의 실정이 궁금하다. 중국에서도 휴대폰 문자 조립이 가능할까? 우리처럼 휴대폰 자판으로 자음과 모음을 조립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닌 사전식으로 문장을 검색할 수 있는 구조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가령 '갈까? = 去?' 혹은 '올래? = 來?'같은 식으로 검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한자를 일일이 문자로 칠수 없기 때문에 발음기호를 알파벳으로 적는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고 보면 영어를 쓰는 나라에선 조립 시간이 좀 더 오래 걸릴 수도 있겠다. 우리 말로 흔히 '안내' 정도로 해석되는 'information'만 조립하려도... 대신 한글 '꾹'같은 문자처럼 몇 번을 반복해 누르는 번거로움은 없으리라.
아무튼 휴대폰 문자만큼 신경쓰이는 부분도 드물다. 세월 따라 휴대폰 문자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 '스마트폰'처럼 정보를 집대성한 것일수록 인간의 속성 변화도 빨라질 것이다. 휴대폰 문자에 울고웃는 인생사! 오늘은 몇 사람으로부터 어떤 문자가 올까? 운전 중일 땐 참아주길... 가만히 창 너머 공상에 빠져있을 때 보내주면 나도 시적인 문장을 구현해낼 수 있을 것이다. 바쁜 세상에 휴대폰 문자까지 신경을 써야 하니 머리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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