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질이라 말을 하면 천박하게 들릴까? '이간질' '싸움질' '연애질' '삿대질' '서방질'처럼 말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 또한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천박하다고 말할 게 아닌 것이다. '성기'라고 표현하는 것보다 '살쑤시개'라는 표현이 얼마나 순수한가?
과거 미국의 카터 대통령 취미가 도끼로 나무 찍기였다. 울창한 수림의 거목 아래서 간편한 옷차림으로 밑둥을 향해 날선 도끼를 힘 가진껏 내리찍는 기술이었다. 고도의 집중력과 숙련된 기술을 요하는 도끼질은 거목의 밑둥을 찍어 쓰러뜨리기에 얼마의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찰스 브론슨의 구겨진 미간을 연상시키는 카터 대통령의 날렵한 도끼질에 힘없이 거꾸러지던 육중한 나무가 생각난다.
시골에서 태어난 사람들에게 도끼질은 일상의 방편이었다. 여기서의 도끼질이란 통나무를 모탕에 괴어놓고 도끼를 휘둘러 내리찍는 걸 말한다. 그렇게 되면 나뭇결대로 화목이 쫘악 쪼개지는데 완전한 형태를 가리켜 '장작' 혹은 '장작개비'라고 하는 것이다. 장작감으로는 참나무가 최고로 꼽혔다. 화력(火力)이 세어 아궁이에 몇 개비 집어넣고 불을 붙이면 금새 시뻘건 불길로 화룽화룽 타올랐다. 구들을 아주 그냥 싹 녹여 없애버리겠다는 기세로...
휴가를 받아 고향에 가면 혼자 조용히 도끼를 들고 마을 뒷산으로 향한다. 고사목으로 변한 대상을 골라 도끼질을 하려는 마음에서다. 언뜻 보면 꼭 미친놈이 쇼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내게 있어 도끼질은 엄연히 스포츠다. 내 눈엔 널따란 필드에서 쇠몽둥이나 휘둘러대는 '골퍼'라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상하다. 실내 마루바닥에서 타이트한 차림으로 딱딱한 공을 둘둘둘둘 굴려 타켓을 자꾸 쓰러뜨리는 볼링 회원들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니 도끼질하는 사람을 낯설게 보지 마라.
흔히
장작을 쪼개기 위해 휘두르는 도끼로는 재래식 대장간 제품이 최고다. 생긴 것부터 뭉뚱그린 형태의 그 도끼는 자루마저 어설퍼
보이지만 장작을 쪼개 날리는 데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 도끼라는 게 날에서 대가리쪽으로 각(角)이 높을수록 장작에 먹히는
힘이 세다. 그렇지 않은가? 한마디로 말해 값을 높이 부르는 서양식 도끼는 두께가 얇아 아웃도어 게임(Outdoor
Game)에서나 요긴한 것이다. 아웃도어 게임에서의 도끼질은 장작을 패는 쪽이 아니라 통나무를 가로 잘라 날려버리는 시합이니 '열어젖힐 開'의
원리보다는 '끊을 斷' 개념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니 몸통이 날렵할 필요가 있는 도끼다.
잘 생긴 도끼를 보면 거구의 육중한 힘발이 생각난다. 그리하여 나도 어느덧 도끼를 닮아지고 싶은 것이다. 생긴 건 같잖아도 그 안에서 내뿜는 괴력은 동한기 모탕의 통나무를 팍팍 날려버리지 않는가? 한 방 내리꽂을 때마다 허공으로 피융피융 튀어오르는 장작의 파편들은 묘한 카타르시스을 동반한다. 더께지어 응어리진 무엇이 팍팍 튀어 날아가는 듯한 스릴...
아까
잠깐 아웃도어 게임에 대하여 논했는데 캐나다, 미국, 뉴질랜드 같은 나라에선 오래 전부터 스포츠로 정착이 되었다고 한다. 미국에선 아웃도어
게임을 즐기는 인구가 8,000만명을 헤아린다 하니 놀라운 현상이다. 단순히 도끼로 통나무를 찍어 날리는 종목만이 아니라
인듀런스(Endurance : 직경 1미터 가량의 통나무를 톱으로 써는 게임), 혹은 핫소(Hot Saw : 전기톱으로 직경 1미터 가량의
통나무를 잘라 3조각을 만드는 게임), 스피드 클라임(Speed Climb : 밧줄만으로 높이 20여미터의 나무 기둥을 오르는 게임)이
있다고 들었다.
그뿐이 아니다. 물에 띄운 통나무 위를 달리는 붐런(Boom Run), 물에 띄운 통나무 위에서 상대를 떨어뜨리는 록로링(Log Rolling), 혹은 스피드 클라임처럼 기둥에 올라가 기둥 끝에 붙은 나무조각을 잘라내고 내려오는 트리토핑(Tree Topping)같은 것들이 있다. 전자에 언급한 스피드 클라임, 인듀런스, 핫소, 스프링 보드를 함께 치르는 팀 릴레이(Team Relay)이까지 다양하다고 한다.
선진문화로 한 걸음 다가서고 있는 요즈음 수많은 스포츠가 대중화되어가고 있다. 직장마다 주5일 근무제가 정착되어 각종 동호회에 가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우리 직장만 해도 야구부, 축구부, 등산부, 산악자전거부, 볼링부, 꽃꽂이부, 서예부, 음악서클반 같은 것들이 있다. 물론 종교 단체는 변론으로 한다. 아무튼 이러한 현실에서 아웃도어 게임 같은 것들이 자연스레 정착될 날이 머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문득 그 옛날, 마당가에서 땀 흘리며 도끼질을 하던 추억이 생각난다. 눈이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군불에 요긴한 참나무 토막을 모탕에 놓고 퍼렇게 날선 도끼를 뒤통수께로 넘겼다가 두 팔에 힘을 모아 냅다 내리찍으면 괴어 있던 장작이 두 패로 '퍽' 쪼개졌다. 장작의 결은 처녀의 가슴처럼 눈부셨다. 그걸 주섬주섬 모아 허청 공간에 쌓아 내일에 대비하거나 즉석에서 부엌으로 가져가 아궁이 군불감으로 활용했다. 아궁이로 들어간 장작은 용광로 같은 혀를 내두르며 씩씩하게 잘도 타올랐다. 가끔 불티를 톡톡 쏘아대기도 하면서...
"엇, 뜨거!"
소리 치면 작은 아궁이 밥솥 앞에서 불을 때던 어머니의 면박이 잇따랐다.
"이놈아, 잠바에 구멍 뚫린다."
그럼 또 내가 그랬다.
"묵은 감자 같은 거 없유?"
"감자는 다 타고 숯불에다 묻어야 허는 거여. 지금 넣으면 그게 어디 남아 나겄냐?"
"밥 먹고 묻었다가 오줌 마려울 때 나와서 뒤져 먹으게유."
"잠들지나 말거라, 이눔아..."
어느덧 옆엔 털부리 개가 와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도끼를 차에 싣고 다니다가 오해를 받은 적도 있다. 랭글러 지프에 소프트 탑을 씌워 몰고 다닐 적에 후미 트렁크에 도끼를 세워 실었더니 경찰관이 검문을 하는 것이었다.
"아저씨, 아저씨, 잠깐 세워 봐유."
"왜 그려유?"
"잠깐만 세워 보셔유."
경찰관은 후미 짐칸을 가르켰다. 거기 하늘을 향해 서있는 도끼자루를 언뜻 범죄용으로 의심한 모양이었다.
"절때루 그런 사람 아녀유. 도낏날을 보시먼 아시겄지먼 오직 나무 쓰러뜨릴 때에만 써먹는 거여유. 나무 찍을 때에만 꺼냈유."
일껏 설명을 해줬다. 그랬더니 경찰관이 점잖게 이르는 것이었다.
"가만히 뉘어가지고 다니셔유. 바짝 세우면 혐오감을 줄 수 있으니께유."
그래서 그 후로는 계속 뉘어가지고 다닌다. 아랫도리 물건처럼 써먹을 때만 세우려고...
봄철, 휴가를 받아 고향에 가면 검산골 수림 속으로 들어가 웃통을 벗어놓고 아름드리 고사목 밑둥을 찍어 날려버리겠다. 세상 시름 다 잊고 도끼질에만 전념하리라. 그 순간 나는 로렌스 소설 <채털리부인의 사랑>에 나오는 클리포드가(家)의 산지기가 부럽지 않으리. 에잇, 당장 이번 주말에 도끼 싣고 떠나야겠다.
* 사진 출처 : http://espn.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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