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무섭다는 말이 있지만 봄불도 여간 무섭지 않습니다. 봄바람은 살랑대는 치맛자락 하나 흐트러뜨리는 데에 족하지만 봄불은 온 산을 헥타르로 태워 없애니까요. 자연적인 조림으로 우거진 숲이 불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산으로 나무하러 가서 똥 마렵다고 한쪽에다 오금 까는 사람은 담뱃불부터 조심하세요. 요즘 같은 때 가랑잎에 불이 붙으면 다 태워 먹습니다. 봄불은 여우불이란 말도 있잖습니까? 꺼진 것 같으면서도 보이지 않게 타는 불이 봄불입니다. 봄불은 또 사방으로 날아다닙니다. 불씨가 허공을 날아 여기 저기로 번지는 것입니다. 어지간한 길은 그냥 뛰어 건너요. 그래 내지리 망심산에 불이 붙으면 합수리를 태우고 각대리를 절단 낸 후 경둔리까지 넘볼 거란 얘기입니다. 진짜 무서운 불입니다. 그러니 똥 한 번 누려고 담배 꼬나 물었다가 불 잘못 내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불을 내면 바쁘고 귀하신 공무원들께서 행차해야 하니 여러 모로 안좋습니다. 내 밥 먹으며 원망 듣는 일은 없어야지요. 그 사람들이 어디 산불 진압에 대비하여 존재하나요? 더러는 노랑색 민방공 훈련용 잠바뙈기에다 호박모 떡잎 붙은 모자 쓰고 다니면서 사람들 가려가며 개폼 잡으라고 있는 사람들이지... 그 사람들 구두 밑창에 흙 묻게 해서 좋을 게 없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하나만 짚고 갈게요. 화장실 갈 때 담배 불 붙여 물고 가는 사람을 보면 참 궁금합니다. 지금이야 좌변기 수세식으로 싸악 씻어내는 구조이지만 한 그릇 정도 밑에다 내질러놓고 그 냄새 다 맡아가면서 담배를 쪽쪽 빨고 후후 뿜는 사람을 생각하면 보통 비위가 아닐 거란 믿음을 갖게 해요. 그러니까 구수한 니코틴 냄새만 구강으로 흡입되는 게 아니라 구리한 똥 냄새도 입 안으로 흡입될 거란 얘기이지요.
뭐 자기 몸에서 나온 똥 가지고 냄새 맡는 것이야 탓할거리가 못 되지만 상식적으로 담배 맛을 즐기는 자리에서 똥 냄새를 곁들여 맡는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러는 사람은 담배 피울 적에 똥독간에서 담배를 피운 적이 없느냐? 없습니다! 전 장마철에 구질구질하면 뒷간 출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똥을 참을 수 없으면 어떻게 했느냐구요? 우산 쓰고 삽 하나 든 채 뒷산으로 뛰어 올라갔지요.
죽대 같은 소나기 퍼부을 땐 우산이 무용지물이 되므로 꾹 참았다가 빗줄기 약해지는 틈을 노려 잽싸게 산으로 올라가 잘 띄지 않는 잔솔밭 애솔나무 옆에 살짝 앉아 일을 치르고 삽으로 덮었습니다. 그런 양분 덕에 오늘날 고향집 뒷산이 수림으로 우거졌는지 모르겠습니다.
봄불 화두가 똥 얘기로 빠졌네요. 아무튼 혹시라도 산으로 나무하러 가서 똥 마렵다고 담배 물고 자리 고르는 분은 가급적 가랑잎 지대로부터 멀리 떨어져 앉으세요. 건조기 가랑잎은 푸작나무 감으로는 일등일지 몰라도 불씨엔 사정없이 일을 내버릴 우려가 높습니다. 요즘은 반드시 나무만 하러 산에 가는 게 아니잖습니까? 밤나무 곁순도 봐줘야 하니까요.
봄불에 홀려 넋 나가는 일이 없도록 우리 모두 '너도 나도 불조심' 표어를 명심합시다. 입산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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